명품, 떼까마귀 울음에 귀 기울이기
명품, 떼까마귀 울음에 귀 기울이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1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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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시월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을 기다린다. 북쪽의 다양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그들이 가져오기 때문이다. 기다림과 그리움의 대상이면서 신선함으로 다가오는 그들을 이십 년째 만나면서,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십 년째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올해도 약 십만이 함께 삼호대숲에다 태화의 잠자리를 정했다. 그들은 매일 새벽 잠자리를 떠나 사방으로 먹이터를 찾아 날아간다. 종일 논과 밭을 옮겨가며 뒤지고 쪼면서 부지런히 살아간다. 이윽고 석양의 그림자가 어둠의 겉옷을 입고 긴 너울을 쓴 채 밤나들이 채비를 하면 그들은 어김없이 잠자리로 되돌아온다. 매일 새벽 삼호대숲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그들이 보고, 듣고, 느낀 동서남북 사방의 뭇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기 위해서다.

그들은 사연과 이야기를 전하는 배달부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명품이다. 매년 철따라 울산을 찾는 그들의 기억에 경탄한다면 굳이 다른 곳의 명품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그들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공존하고 그들을 명품이라 부르는 까닭은 그들과 우리 모두 티끌과 흙으로 되돌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귀 기울여 그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눈으로 그들의 모습을 본다. 듣고 본다는 것은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가슴에 담고 싶어서다.

난 그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어둠을 밝히고 어둠 속으로 숨지만 밤을 두려워한다. 밤이면 찾아오는 포식자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그들은 낮도 밤 못지않게 두려움을 느낀다. 시끄럽다, 지저분하다, 공포를 느낀다, 재수 없다와 같은, 검증되지 않은 온갖 혐오의 혀 화살 때문이다. 매로 맞은 상처는 며칠이면 아물지만 혀로 맞은 회초리는 골수에 파고들어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다. 그들은 참새같이 낮에 벼이삭을 쪼아먹는 것도 아니고, 오리같이 어둠을 기다렸다가 훑어먹는 것도 아니다. 오직 추수 후 논밭에 떨어진 낙곡만 집어먹을 뿐이다. ‘이삭 줍는 여인들’처럼….

그들의 군무는 경이롭고 아름답다. 그 이유는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행동을 보여주고, 배려의 날갯짓으로 자유의 공간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울산을 찾는 것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같이, ‘내 논에 물들어가는 것’같이 기쁘다. 그들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행복이다. 행복은 닫지 않고 열린 마음일 때 찾아온다. ‘두 이레 강아지 눈 뜬’ 상태로는 결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들은 울음으로 말을 전한다. “북쪽이 너무 추워 울산을 찾았습니다.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왔습니다. 육개월만 부디 살다 가게 해 주십시오.” 그들은 울산시민들을 철저히 믿고 신뢰한다. 시민들이 말로 죽이는 도시가 아니라, 실천으로 살리는 공존의 도시가 울산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난 그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함께한다. 난 그들의 생태를 조금은 안다. 그래서 그들이 이곳에 찾아옴을 반긴다. 그들을 사랑하고 안다는 것은 먼저 오해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을 알려 하지 않고, 그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알지 못하면 오해와 미움이 쌓이기 마련이다. 내가 삼천육백오십일을 정해놓고 만나는 것은 그들을 좀 더 정확하게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실천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 새벽과 어둠을 알리며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지적질보다 자기를 아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자신을 먼저 알면 상대방의 가치는 자연적으로 알게 된다. 떼 지은 무리와 날아오는 거리, 이소시각을 알고 나서 그들을 풍요로움, 지혜로움, 건강함, 활동적,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부각시켜도 무리가 아니다. 그들을 만나면 내 작은 키가 커지고, 내 어두웠던 마음이 밝아진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그들은 화내는 일이 없다.

관계의 어려움은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과 우리 사이도 그렇다. 그들은 갑질도 갑질의 욕망도 갖지 않는다. 그저 자기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추우면 남쪽으로 날아오고, 더우면 북쪽으로 날아간다. 그들이 일생동안 반복하는 자연스러움이다.

그들은 약속을 지키는 신용자다. 시월에 돌아온다고 전제하고는 사월 말에 떠난다. 이 약속을 그들은 무려 이십년이나 어김없이 지켰다. 그들은 조화(調和)로운 환경을 찾아온다. 태화(太和)가 조화로운 환경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 태화 울산의 바탕은 떼까마귀가 마땅하다. 천현(天玄)이듯 태화강의 새벽하늘은 검은색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어둠 가운데 검은 깃을 숨기고, 어둠 가운데 검은 울음을 운다. 그들은 사람들이 떠나는 현실에서도 도리어 찾아온 반가운 손님이다. 현조(玄鳥)인 제비가 옛집을 찾듯 그들도 옛 잠자리 삼호대숲을 찾아든다.

물가의 버드나무 가지가 백번 꺾여도 또 새로운 가지가 움을 트듯, 그들은 20년 넘게 울산을 다녀갔는데도 해마다 날개를 꺾인다. 조류인플루엔자(AI) 소리만 나오면 그들은 우울하다. ‘혐의 없음’ 판결문을 받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지 모른다. 그들은 빨강, 파랑, 노랑이란 색의 삼원소로 태어났기에 평생 검은 옷만 입는다. 떼까마귀가 바로 그들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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