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家長)을 닮은 장닭
가장(家長)을 닮은 장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0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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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아 닭아 울지 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심청이가 아버지 곁에서 방백(傍白)으로(=혼잣말로) 불렀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집에서 키우는 날짐승이다.

전요(田饒)는 닭의 다섯 가지 덕을 말했다. “머리의 관을 문(文)으로, 발의 예리한 발톱은 무(武)로, 적에 맞서 싸우는 것을 용(勇)으로, 먹을 것이 있어서 알리는 것을 인(仁)으로, 밤을 지켜 우는 것을 신(信)으로” 비유했다. 전요는 노(魯)나라 애공(哀公) 의 측근이었지만 능력과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자신을 닭의 오덕으로 비유했지만 역시 허사였다. 마침내 연(燕)나라로 갔다. 연나라는 전요를 인정하여 재상의 소임을 맡겼다. 한나라 한영(韓?, 생몰연대 미상, 연나라 사람)이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전요와 노나라 애공의 일화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미 많이 알고 있는 중국 옛 이야기다.

2년째 닭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 ‘백봉오골계’다. 선친의 취미를 작은아들인 필자가 물려받은 셈이다. 부산 온천천 가장자리 장전동에서 살았던 덕분에 방과 후에는 으레 오리, 거위를 몰아 물가에서 놀았다. 금강공원 쪽으로 이사한 뒤로는 십자매, 금화조, 문조, 잉꼬, 카나리아를 키웠다.

도심 주택가에서는 냄새, 울음 등 민원 때문에 백봉의 양육이 불가능하다. 다행히 산자락 단독주택이어서 가능했다. 두어 평 남짓한 오죽 밭에 그물을 둘러 우리를 만들었다. 현재 호두관인 장닭(=수탉)은 암탉 두 마리를 거느리고 산다. 지난봄에 부화한 병아리 세 마리는 3주령이 지나 어미와 함께 지인에게 선물했다. 이 장닭은 그러고도 암컷 두 마리와 함께하고 있으니 대단한 행운아인 셈이다. 사랑도 번갈아가며 자주 한다. 갈수록 며느리발톱이 예리하게 자라고, 꽁지 장식깃도 숱이 많아지고 있다.

10월 2일,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아침부터 내린 비가 걱정이 되어 퇴근 후 닭장을 살폈다. 낮에 들이닥친 미탁 때문인지 비에 쫄딱 젖은 녀석들 모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비를 피하라고 덮어주는 지붕을 한사코 마다하고 한곳에서 모여 쉬거나 잠을 청했고 심지어는 밤비 속에서도 용케 버텨내던 녀석들이 아니던가. 이 습관은 아마도 병아리 때부터 오죽 밭에서 자라면서 굳어진 것이지 싶다.

한 움큼 먹이를 뿌려 주었다. 그런데 웬일? 평소 같으면 먹이를 달라며 낮은 소리를 내며 우루루 몰려다니던 행동을 이날은 볼 수가 없었다. 녀석들은 횃대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비를 맞으면서도 꼼작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나 닭이나 비 오는 날은 그리 달갑지가 않은 모양이겠지.

전날부터 끈덕지게 내린 비는 장닭의 체면을 기어이 구겨놓고 말았다. 다른 때는 부푼 깃털로 암컷에게 으스대면서 한껏 자태를 뽐내던 녀석이 이날만큼은 풀이 죽었다. 그야말로 ‘비 맞은 장닭 꼴’이었고 보기에도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어둠이 내리면서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바람까지 거드는 가운데 오죽은 ‘바람허수아비(Air puppet)’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10월 3일 새벽 4시경, 집중호우가 어느새 보슬비로 치장을 바꾸었다. 맑은 날이면 새벽 3시경이면 시작되던 장닭의 울음 우는 시각이 간밤의 폭우 탓인지 한 시간가량 늦추어졌다. 보통 때 평균(30일, 220분 기준) 166회, 최대 222이던 울음 횟수도 82번으로 뚝 떨어졌다. 지켜보던 장닭에게서 문득 성실한 가장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러한 가장의 역할이 눈물겹게 여겨지기도 했다. 적어도 세 가지 관점에서 그랬다.

첫째, 새벽을 알리는 울음소리다. 두 시간도 더 넘게 수백 수십 번을 내는 울음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없이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소임이다. 장닭의 울음소리 ‘꼬끼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약해지기 마련이다. 태풍 ‘미탁’이 빠져나가던 이날 새벽, 장닭의 울음소리에는 유난히 힘이 없어 보였다. 이날 새벽녘의 울음이 어쩌면, 아침이 밝아오면 곧 드러날, 비에 젖은 초라한 모습을 걱정하는 가장의 가슴앓이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둘째, 먹이를 보면 자신은 먹지도 않고 사방 경계부터 하는 습성이다. 가장의 행동도 다르지 않다. “나는 배불리 먹고 왔다.” 이 짧은 말속에는 피할 수 없는 가장의 운명 앞에서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까만 숯덩이 가슴을 안으로만 삼켜버리는 ‘사나이의 눈물’이 녹아있는지도 모른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가장의 손에 쥐어진 군고구마 봉지에는 으레 손난로 같은 가족 사랑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셋째, 파수꾼의 역할이다. 장닭은 항상 눈망울을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살피는 습성이 있다. 까마귀라도 지나가면 장닭은 짧은 경계의 소리를 내서 무리에게 알린다. 그 소리를 들은 처첩은 잽싸게 몸을 숨긴다. 장닭은 새벽을 알리는 높은 음에서 경계메시지를 보내는 짧고도 낮은 음까지 다양한 울음의 언어로 소통을 한다. 장닭의 충실한 역할은 그 자태만큼 멋지다. ‘가장(家長)을 닮은 장닭’을 보면서 여러모로 어려운 이 시대의 가장을 생각해 본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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