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태화강 국가정원
감동의 태화강 국가정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25 2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의 학창시절 태화강에 대한 기억은 참으로 별로였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젖줄이지만 공업화의 희생양이 된 태화강은 그 때만해도 ‘똥물’이라는 단어가 수식어처럼 늘 붙어 다녔다. 당시 태화강은 조롱의 대상이었다. 어느 친구가 잘못이라도 할라치면 “너 그러다 태화강 똥물에 빠져 죽는데이”라고 경고성 멘트가 유행어처럼 쓰였다.

그 시절의 태화강을 겪어보지 못한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가히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겠지만 그 때는 그랬다. 태화강 오염의 시작은 아마도 현재 중구 우정동 SK2차 아파트 자리에 있었던 선경직물이 아닌가 싶다. 1970년대 초반으로 기억이 되는데 선경직물이 들어서고 생산한 직물을 염색한 폐수를 그대로 태화강으로 흘려보냈다.

옅은 초콜릿색의 뜨거운 물이 흐르던 그 곳이 지금은 복개가 됐지만 중구 유곡동 무주골(우정혁신도시 공룡 발자국 공원 일대)에서 태화초등학교와 태화시장을 거쳐 태화강으로 이어진 하천이다. 한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쉴새 없이 흘러내려 동네 빨래터 역할도 했다. 그 때는 그 따뜻한 물이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인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저 따뜻한 물이 나오는 것이 좋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오염의 정도가 심해졌다. 코를 찌르는 악취는 기본이고 수시로 허연 배를 드러낸 물고기떼가 강물위에 떠 있기 일쑤였다.

그랬던 태화강이 최근 대한민국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그 시절의 태화강을 겪은 세대라면 이건 단순 환골탈태(換骨奪胎) 수준이 아니다. 그냥 ‘기적’이다. 국가정원 지정이 발표되는 순간 지금껏 이어져온 태화강의 변화가 머릿속을 스친다.

태화강에 제대로 된 변화가 일기 시작한 건 밀레니엄을 지나서였다. 1987년 수립된 태화강하천정비기본계획 이후 2003년에 울산시는 재정비계획을 세우고 수질개선과 생태계 복원사업을 본격화하게 된다. 이듬해인 2004년에는 ‘2004에코폴리스 울산’을 선언하며 태화강을 비롯한 환경보전을 시정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 기존 공업도시에서 친환경 생태도시로서 거듭날 것을 천명했다. 이후 2005년에는 1조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하수처리장 확충과 관거 정비사업, 퇴적오니 준설사업, 하천건천화를 막는 유지용수 확보사업 등 획기적인 수질개선과 생태복원정책이 진행됐다. 이러한 노력을 기반으로 태화강은 마침내 생명의 강으로 되살아나게 됐고, ‘태화강 대공원’이라는 이름하에 울산을 대표하는 친수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

실제로 1996년 오염된 물로 물고기가 살기 어려웠던 6급수의 태화강은 2007년부터 오염물질이 거의 없는 청정상태에 근접한 수질을 지닌 1급수로 환골탈태했다. 연어와 황어, 백로, 떼까마귀와 갈까마귀가 찾아와 활동을 다시 시작했고, 이 점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20대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태화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번지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태화강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데는 울산시 행정의 강력한 의지를 꼽을 수 있다. 또 범시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범시민운동으로 진행한 점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아울러 기업 사회공헌 활동도 왕성해 울산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의 활발한 참여도 태화강의 기적에 크게 일조했다는 평가다.

태화강에는 감동이 있다. 죽었다가 살아난 것도 그렇지만 강을 살리기 위해 시민 모두가 한 마음 한뜻으로 힘을 합쳤다는 스토리는 더욱 감동적이다.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것도 어쩌면 그런 감동이 인정을 받은 게 아닐까. ‘청정수’가 흐르는 태화강을 다시는 ‘똥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몫이다.

박선열 편집국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