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게’살자
‘무디게’살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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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참 빠른 세상이다. 땅위에서 움직이는 것 중 제일 빠른 것은 KTX열차다. 그것만 그런가? 인간의 말(言)도 참 빠르다. 게다가 날카롭기까지 하다. 무기로 말하자면 예리한‘창’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말의 창’이 일상 여기저기에서 우리를 향하여 겨누고 있다. 그럴 땐 우리는 어떻게 맞이하는가? 맞대응으로 이어가면 어떻게 될까? 승과 패가 없이 그냥 마음에 깊은 상흔만 남을 뿐이다. 이렇다면 좀 ‘무디게’ 반응하고 둔하게 대응한다면 정말 좋은 대처방법이 되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정형외과 의사 출신인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로는 그의 저서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에서 다음과 같이 좋은 이야기를 한다. “조금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예민하게 굴기보다는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세요.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며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생각해 보세요. <둔감하고> 아량 있는 마음가짐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됩니다.(부호는 필자가 붙임)” 바보같이 멍청하게 대하자는 뜻이 아니다. 하나하나에 맞대응하지 말고 적절하게 부딪치며 살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예민하다’의 반대어로 ‘둔감하다’를 내세울 수 있다. 그 의미를 나름대로 일상에서 부정적의미로 풀이하면 좀 둔하다, 좀 멍청한 데가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좀 게으르게 보인다, 세상 정보에 항상 타인보다 한 발자국 늦다, 움직임이 느려서 살기에 불편하다 등과 같은 뉘앙스가 풍긴다.

반면 긍정적인 면으로는, 병에 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주사를 맞아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 장내시경 검사 때 별로 통증을 느끼질 못하여 수면내시경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건강할 것 같다, 돼지 같은 성격이라 식욕이 왕성하여 건실할 것 같다, 일찍 잠에 들고 늦게 일어나 혈압에는 변동이 없을 것 같다 등이다.

1971년 서울 한복판 대연각호텔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다. TV방송에서 직접 중계할 정도로 세상의 이슈가 집중되었다. 정신이 없어 무작정 고층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창틀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반면 객실 창가에서 조용히 흰 타올을 흔들면서 느긋이 구조를 기다리는 대만인도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그는 생명을 구했다. 그야말로 그는 천운을 가진 ‘둔감력’ 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번엔 반대로 예민한 경우를 일상에서 보자. TV토론 패널 중에 어찌나 샤프한 사람이 있는지, 보는 사람이 신경이 쓰여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린 적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또 이런 부류의 사람도 있다. 늘 말쑥하게 차려입고 다니는 어느 지인은 깔끔한 인상을 풍겨 남에게 호감을 주어 좋다. 그럼에도 성격은 날카롭다. 게다가 싫은 소리를 들으면 더욱 예민하게 돌변해 버린다.

세기의 쿵푸 무술 1인자 브루스 리 ‘이소룡’은, 대련 시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비수같이 제압하는 것이 압권이다. 둔감한 투우사처럼 멀리서 예리하게 관망하며 판단한다. 상대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촐랑촐랑 약을 올리며 가까이 다가가면 단방에 쌍절봉으로 박살낸다. 적당한 ‘둔감력’으로 쿵푸 고수의 최고 노련미를 내보이는 거다. 바보처럼 무디게 참았다가 순간 공격하고 허점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찌른다. 둔감함의 극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철학자 니체는, 사람과의 교제에도 ‘둔감함’이 필요하다고 한다. 늘 민감하고 날카로울 필요는 없다. 상대의 어떤 행위나 사고의 동기를 이미 파악했을지라도 모르는 척 행동하는 일종의 거짓 둔감이 필요하다는 거다. 적절한 둔감을 내보이면서 세상을 의연히 살아가는 것도 삶의 중요한 방식이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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