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100주년, 상해에서
임정 100주년, 상해에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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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륙한 비행기에서 한참을 대기했다. 세계적인 경제도시답게 몇 분 간격으로 줄을 서서 이착륙을 기다리는 푸동 공항이다. 1919년 독립만세를 외치고 상해에 임시정부를 세운 지 100년이 되는 해, 올해 첫 여행의 발걸음인 상해는 오래토록 마음에 두고 있던 도시였다. 한성임시정부를 비롯해 7여개의 임시정부가 제 나라 안에 자리 잡지 못하고 정부청사 간판을 들고 요원들과 독립군들이 떠돌다 첫 깃발을 세운 그 상하이다.

세탁소, 야채장사, 우유배달을 하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였지만 턱없이 부족했을 터. 당시 상해에 기반을 둘 수 있는 큰 자금을 나라를 위하여 내어놓은 일가, 백사 이항복의 10대손 우당 이회영 선생님의 6형제 이야기가 이곳에도 전해지고 있었다.

“내 나라가 없는데 내 땅이 무슨 필요가 있겠소.”

명동을 비롯한 서울의 요지 땅, 가지고만 있어도 큰 가치가 될 것을 헐값에 팔려했을 때 만류한 사람들에게 이회영 선생이 한 말이다. 물론 그 땅을 사들인 이들은 지금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을 테고 나랏일을 보는 현직 국회의원인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 형제들은 가난하게 살다 모두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 모두가 진 빚이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이제는 한 세기의 역사를 그은 당시 임시정부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아편전쟁 이후 연합군 조계지였던 와이탄과 150년의 신천지는 화려한 거리로 변하고 음식점과 백화점이 들어섰다. 마침 중국의 유명한 연예인이 방문하는 행사가 있는지 경찰들이 수많은 인파들을 통제시키고 있었다. 바로 몇 발짝,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허공으로 내걸린 낡은 빨래가 이층건물 창에서 나온 긴 막대에 목을 매고 있다. 비가 많이 오고 습한 상해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옆 건물에 조그맣게 ‘대한민국임시정부’ 간판이 걸려있다.

점심시간이 끝난 시간,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중국인이다. 건물이 중국 소유고 관리도 그들이 하는 것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기분이 묘하다. 그나마 중국 정부에서 문화재로 여겨 아직은 보호되고 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지역은 개발이 되어 수십억을 호가하는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개발되지 못하고 묶인 곳에 사는 주민들은 스러져가는 가옥이 불만일 수도 있겠지만 공산주의라 가능한 일이지 싶다. 대한민국의 땅이었으면 벌써 주변은 헐리고 건물만 외로이 남지 않았을까.

어느 나라에도 인정받지 못한 설움, 까만 철문을 열고 들어섰다. 간단한 영상 시청을 하고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집무실을 둘러보았다 한 발 한 발 겨우 디뎌지던 가파른 계단만큼 위태하고 절박하던 그 당시의 상황을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사진을 찍지 마세요.’ 서툰 발음으로 무표정의 안내요원이 반복했다. 평일이지만 꽤 많은 사람의 삐거덕거리는 나무 바닥 발자국 소리가 이어진다. 숨을 죽이고 멈춘 호흡, 지난 빛바랜 사진에 모두 속울음을 울었으리.

그 당시 정신적인 지주였던 김 구 선생님도 그렇겠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윤봉길 의사도 매우 존경받는 분이었다고 한다. 상해 축구경기장 옆 루쉰 공원 안에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폭탄 의거에 감명 받은 중국 당국이 그 후로 호의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나에게는 이제 한 시간밖에 없습니다.”

의거 전 김 구 선생과 바꿔 찬 시계와 자결용 도시락 폭탄, 의거 시 사용했던 수탄 폭탄도 당시 영상물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그의 나이 25세였다. 중국의 전통을 살려 잘 꾸며진 정원을 거닐며 치열했던 백 년의 시간을 밟아 본다는 것, 역사를 잊은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윤봉길 의사의 의거 배후로 지목된 김 구 선생과 정부요인의 피난처였던 가흥은 항주 가는 길에 있다. 중국의 사상가 추푸청이 도움을 준 은신처, 당시 수백억의 현상금이 걸렸던 김구 선생과 상해에서 추방당한 임시정부의 다음 정박지 항주 가는 길목엔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고된 핏빛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어느 나라도 인정해주지 않았고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전 민족운동이었던 3·1운동에 의해 수립되었고 국민들의 의지와 이념적 기반 위에 설립되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를 시작으로 항저우, 전장, 창사, 광둥, 류저우… 마지막 충칭까지, 1919년 4월 11일부터 1945년 8·15 광복까지 27년 고스란히 이어진 역사는 100년을 거슬러 다시 새로운 100년을 기약한다. 정부에서 4월 11일을 임시공휴일로 추진한다는 좋은 소식도 들린다.

하늘에 천국이 있다면 땅에는 항주가 있다고 극찬한 마르코 폴로, 소동파의 멋진 시들이 탄생했던 아름다운 서호를 가진 항주에 도착했다. 흩뿌리는 비에 젖은 호수를 가르는 조각배들이 평화롭게만 보인다. 언젠가는 찬란한 햇살아래의 뱃놀이를 기약해보며, 그저 눈에만 담기에도 왼쪽 가슴 아래가 울컥해지는 그런 날이었다.

< 최영실 여행수필가·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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