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품은 함월산 골굴사
달을 품은 함월산 골굴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2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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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태어난 아이라 하여 ‘동아’라 불리던 개가 있었다. 이십여 년 전 우연히 넘은 어느 절의 산문, 그곳에 마음이 머물렀던 것은 느릿느릿 걸음으로 경내를 안내하는 한 견공 때문이었다. 사람이 다니는 길 한복판에 배를 누이고 오가는 이 누구신가, 인기척도 않고 무심하던 순한 눈빛. 다른 진도견과 달리 가축이나 산짐승을 해치지 않으며, 사는 동안 한 번도 새벽 예불을 거르지 않아 동아보살이라 불리던 동아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늦가을 켜켜이 쌓인 낙엽이 바람에 뒹구르르, 오랜만에 발걸음한 그곳에 온화한 가을 햇살을 베고 누워 잠이 든 동아를 꼭 닮은 아이가 있다. 오가는 사람과 차에 무심하고 순한 눈빛이 꼭 닮았으니 동아의 아들인가도 싶다.

겸재 정선의 골굴 석굴도에 그려진 함월산 자락 골굴사이다. 원효대사의 마지막 열반지이자 국내에 드문 석굴사원. 골굴사는 불교문화가 한창 번창하던 6세기 경, 인도에서 온 광유성인(光有聖人) 일행이 함월산 중턱의 암반에 마애여래불을 조각하고 12개의 석굴을 파서 가람을 조성한 유일산 석굴사원으로, 한국의 뚠황석굴[敦煌石窟]이라고도 불리는 절이다.

선무도로 몸, 마음의 수련을 하고자 내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한국의 소림사 골굴사는 하루에 두 번, 찾는 이들을 위해 선무도 공연을 한다. 지나는 새도 짐승도 소리를 죽이고 몸을 낮춰 지나야할 것 만 같은 경내에서 공연이라니 생소하지만 수행에도 여러 형태가 있듯 골굴사만의 특별한 매력이 여기에 있다.

선무도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요가나 명상을 아우르는 관법수행법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겠지만 하나로 이어진다. 인도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수행법으로서 참선의 시조 격이며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워 익힐 수 있는 수련이다. 힘 있게 드러내며 함께하는 수행법. 오후 공연을 관람했다.

멈춘 듯 움직이는 부드러운 몸짓, 순간 칼날 같은 날카로움을 만들어 내는 눈빛, 깊고 고요함 속에 들리는 몸의 말은 달의 기운을 품는다는 함월산을 호령할 만큼 힘이 느껴진다. 공연을 보는 내내 불꽃 이는 그들의 눈빛에 매료되었다.

그 뒤로 급경사의 계단을 밟고 묶어진 밧줄을 잡고 꼭대기에 이르면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을 만난다. 골굴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높은 응회암 돌을 깎아서 만든 마애석불이다. 암벽의 꼭대기에 조각한 이 여래좌상은 폭이 2.2m, 높이가 4m로 보물 제581호로 지정돼 있다. 모래 성분이 많이 함유된 암석에 새긴 것이기도 하고 세월의 비바람에 고스란히 풍화되어 지금은 지붕을 씌워놓았다.

동해를 향한 온화한 천년의 미소, 마애여래불상의 정과 선무도의 동은 서로 다른 하나이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무기가 아닐까 한다.

‘다음 생은 꼭 사람으로 환생하여 골굴사에 출가하는 인과를 간절히 바란다.’ 공덕을 많이 세우고 별이 된 동아를 축원하는 주지스님 글이 담긴 비가 보인다. 그런데 동아의 기제사 날을 자세히 보니 내 생일과 같은 날이다. 생과 사의 우연의 연이 신기하다. 동아는 정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을까. 차면 덜어내고 비워지면 채우는 것은 진리의 달, 그 달을 품은 함월산 골굴사의 경전에도 그렇게 쓰여 있을까.

내려오는 길, 저만치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배낭 한가득 짐을 지고 오는 파란 눈의 이방인. 어느 먼 나라에서 이 골짜기까지 버스를 타고 온 것일까. 그녀의 눈빛이 아까 보았던 수련 인들의 눈빛과 꼭 닮았다. 생의 무게를 흔쾌히 견디며 예를 다하는 삶들이다. 찬란하고 거룩한 소멸, 가을이 그러하듯.

최영실 여행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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