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오월
고향의 오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5.2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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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 없이 꽃이 피고 지는 가운데 오월은 농번기의 시작이다. 날이 부옇게 새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농기계가 마른기침을 토하며 일 채비를 서두른다. 이미 모내기 준비를 마친 논에는 물이 가득하다. 수량이 풍부하고 취수체계도 잘 완비되어 구경거리였던 물싸움은 먼 기억 속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꼭두새벽부터 논둑길을 오가며 고래고래 소리치며 서로 먼저 자기 논에 물을 대기 위한 언쟁을 추억해 보면 입가에 절로 웃음이 돈다.

옛날에는 소를 앞세운 쟁기와 서래가 모내기를 위한 도구였고 모심기도 일일이 사람들의 손을 빌린 데 비해 요즘은 거의 기계가 다 한다. 트랙터 한 대가 모를 심는 양이 하루 스무 마지기는 거뜬하다보니 무논은 금방 파랗게 변하고 모심기 기간도 짧지만 바쁜 마음과 조바심은 마찬가지로 보인다.

마을의 대부분의 논들은 예나 지금이나 생긴 그대로다. 바둑판처럼 경지정리가 된 들보다는 꾸불꾸불한 논둑길이며 제각기 다른 모양의 논들이 오히려 필자에게는 더 정겹다. 마을 곳곳에는 계단처럼 생긴 천수답이 참 많았다. 갈치처럼 길고 좁아 흔히 갈치(칼치)논이라 불렀는데, 일하기도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벼가 누렇게 익을 쯤의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지금은 거의 밭이나 과수원으로 변해 보기 힘들어졌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다랑이 논이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필자는 손놀림이 빨라 어릴 적부터 농사일을 거들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부터는 어머니 대신 모심기 품앗이를 나가기도 했다. 당시 마을 사람들 틈에 끼어 듣는 모심기 노래가 하도 구성지고 재미있어 속으로 따라 흥얼거리다 결국 모두 외우게 되었고, 이후 모심기 노래는 선창이든 후창이든 내 몫이 되어 버렸다. 아마도 까까머리 꼬맹이가 일꾼들에 끼어 구성지게 불러대니 어른들이 보기에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같다. ‘물길랑 처렁청 열어놓고 주인 양반은 어데 갔노 / 문어야 대전복 손에 들고 첩의 방으로 놀러갔다.’, ‘해 다 지고 저문 날에 어떤 행상이 지나 가노 / 이태백이 본처 죽고 이별 행상이 지나간다.’ 모찌기, 오전, 오후로 나누어 부르는 노래가 각기 다른데 요즘도 가끔 어른들 앞에 소리를 들려주면 무릎 치며 즐거워한다.

이 달로 모심기가 끝나면 이젠 풀과의 전쟁이다. 몇 해 전부터 마을 회의를 통해 심각한 토양과 수질오염을 방지하지 위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의함에 따라 일일이 뽑지 않으면 안 되어 한시라도 손을 가만 둘 수 없다. 거기에다 밭고랑에 잡초가 수북하면 농 삼아 여기저기서 입을 대기 시작하니 더욱 그렇다. 사실 허리와 관절이 안 좋은 어른이 대부분이라 풀 솎아내는 일도 만만찮다.

마을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연례행사로 풀베기를 한다. 모내기를 마친 유월 중순과 추석 명절을 일주일 앞둔 날이다. 마을 도로변이지만 전자는 마을길을 오가는 사람과 차량의 편리를 위해서고, 후자는 명절을 기해 고향을 찾아오는 출향인과 성묘객을 위한 것이다. 또한 후자는 가을이라 풀씨가 날리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참여 대상은 마을 주민과 주말농장, 산소 등을 소유한 외지인도 포함되는데, 특별한 사정으로 불참한 사람은 3만 원 이하의 성금을 자발적으로 마을에 기부하고, 이 기부금으로 행사 당일 점심 비용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마을공동기금으로 들어간다. 이는 마을공동체와 화목을 이루는 또 하나의 근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태풍과 홍수에 쓸려갔던 하천 주변의 전답이 정부 지원으로 말끔하게 복구되자, 혜택을 입은 집마다 적지 않은 성금을 마을에 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마을사람 모두가 제 일처럼 나서서 정부에 호소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래저래 마을은 점점 풍성해지고 있다. 특별히 많이 가진 사람도, 내세울 인물도 없지만 마을은 부자다. 그리고 건강하다. 그 속에 어깨 맞대고, 등 기대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꽃보다 향기롭고 아름답다.

김종렬 시인·물시불 주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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