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조형물을 보며 37
신라조형물을 보며 37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0.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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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중국의 석재가공기술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도 우리나라 10여명 내외의 석재공장과는 비교가 안 되는 200여명 이상의 공장이 한 성(省)에 5천개소나 된다니 어찌 그들과 비교하겠는가. 그러하기에 세계조형물인 만리장성이나 윈깡석굴 조성이 가능했을 것이다.

거대의 상상을 넘어 존립하는 이 조형물들은 국가안보와 종교성 때문에 죽기 아니면 살기의 기원의 정성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예술에서 정성은 기초적 자세이지만 본성은 아니다.

윈강의 80m 불상과 석굴암본존불상이 4m 남짓해서 규모 면에서는 비교 할 수없다. 그러나 석굴암 본존불상의 가치는 석재가공의 규모나 기능성보다 조형미가 완숙극치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윈깡불상과 같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World Heritage)으로 존립하는 것이다. 부언하면 중국의 명장(名匠) 석공이 석굴암 불상들을 보고 그 완전이상의 조형미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면 그의 일생은 기능석공일 뿐이다.

경주에 산재한 문화재유물은 거의 다 조소(彫塑)작품들이다. 솔거(率去)의 황룡사노송도나 불화가 넘쳤지만 연소소재성의 회화는 전란 등으로 소진, 유실되었다. 그러나 석재나 금속소재의 조형물은 불가연성으로 하여금 유산물이 되었다. 석굴암불상과 다보, 석가탑, 남산의 많은 불상과 석탑 그리고 성덕대왕신종 등 금속주조의 소조작품들이 7C부터 시작한 숨을 지금이나 앞으로도 계속 생동한다.

불국사창건의 중요시설물 국보20호 다보탑과 국보21호 석가탑 조형에 왜 아사달이 선정되었을까. 당시 서라벌에도 많은 석공이 불국사건립의 석재공사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들은 기능공이었지 전체조감시야로 바람직한 조형감각을 소유하지는 못했다. 아사달도 석공이지만 애당초부터 걸출한 조형감각의 소유자인 것이다. 즉 아사달은 다량생산의 기능명장이 아니라 희소창작의 조각가인 것이다.

사실 미켈란젤로도 석재를 다루는 도제(徒弟)의 도석공이지만 조각가로 불린다. 그런데 왜 이태리의 15C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 생각하고 우리 신라의 8C 아사달은 석공으로 낙착시키는가. 시대와 여건이 다른 결과이지만 이 둘의 석재가공의 기능은 동급이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기존가시의 인체를 모방한 명장이고, 아사달은 현존가시하지 않은 두 탑을 창작한 조각가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켈란젤로보다 아사달을 더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아사달(阿斯達)은 다보탑과 석가탑을 불국사의 공간조건에 준하여 주위조형물과 조화되도록 구상, 설계하고 전 공종(工種)을 조감시각으로 조합 총괄한 감독이지 기능인이 아닌 것이다. 취급재료가 석재이기에 석공이고, 목재이기에 목수일 뿐, 종합예술인 영화의 감독인 것이다.

미술이나 스포츠, 영화나 기업이 표현방식을 달리할 뿐이지 미학(美學) 원리는 같아서 균형과 조화, 비례와 강조 등의 구성요소들을 조합, 운영 하는 감각정도에서 그 수준이 나타난다.

모든 타자가 한방으로 득점의 시원함을 선사하는 홈런을 치고 싶다. 그래서 홈런타자에 이르기 위한 엄청난 훈련의 땀을 흘리고, 그 양만큼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홈런은 기능훈련의 질량보다는 애당초 홈런감각에 기인한다. 이찌로는 이승엽의 홈런을 능가하려고 온갖 정성과 양으로 홈런타격을 훈련했으나 안타제조의 선수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나는 야구선수 너는 축구선수이지만 결국 남는 것은 수준이다.

<계속>

/ 배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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