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넉넉한 고향인심을 닮아서일까, 가까이서 마주본 인상은 의외로 부드럽다. 초면(初面)의 서먹함을 어릴 적 별명 소개로 한방에 날려 버린다. “제 별명이 ‘(짱)돌’이었죠. 중학교 때 공부 잘한다고 어느 친구가 붙여준 것인데, 무엇이든 머리에 한번 꽂히기만 하면(암기만 하면)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고 해서 그랬다고 해요. 저도 싫지는 않아서 지금도 id를 ‘돌(石)철우’라고 쓴답니다.”
진정성에 민주노총·노조도 우호적
직접 대면하면 진정성과 붙임성이 금세 피부로 와 닿는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위력이라도 발휘하면 기대 이상의 결실을 챙길 수도 있다. 지난해 9월초 부임했으니 8개월이 조금 넘었다. 그동안 울산에서 느낀 소감부터 말한다.
“처음 울산 올 당시에는 노사 갈등, 대형산재 다발로 걱정이 참 많았지요. 하지만 부임 초기부터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사를 자주 만났더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한계도 느끼긴 했지만 진솔하게 대하다 보니 노사 모두 제게 어느 정도의 신뢰는 주는 것 같습디다. 특히 민주노총 울산본부 분들도 자주 만났는데 과거 어느 지청장보다 진솔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압니다. 그 덕분인지 지난 4월 민주노총 주최 토론회에는 저도 처음으로 토론자석에 앉을 수 있었지요.”
그렇다고 늘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양쪽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다 보면 색안경을 끼고 볼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근로자들은 고용노동부를 사용자 편만 든다 해서 ‘사용부’라 부르고, 사용자들은 거꾸로 약자 편만 든다 해서 ‘근로부’라 부른다. 양쪽 틈바구니에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중재에 나서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조선업계 구조조정 가장 가슴 아파
대기업에 ‘고용유지’ 최선 다해 설득
요즘 가장 가슴 아픈 고민거리는 뭐니 해도 경기침체로 인한 조선업계의 구조조정 사태다. 본의 아니게 수년간 혹은 수십년간 정들었던 사업장을 떠나야 하는 선의의 근로자들에게 일자리 마련해 주는 일도 고용노동지청에 주어진 책무의 하나다. 취업 알선, 교육 훈련, 창업 컨설팅….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도 없고, 또 해서도 안 된다.
이철우 지청장은 ‘실직자 구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고용 유지’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이건 미포조선이건 어느 시점엔가는 기업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가정하면 숙련 근로자들을 무작정 내보내는 것이 최선의 대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신념으로 기업 설득에 나서지만 역량의 한계를 절감할 때가 많다.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가장 클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적극 주선한 것이 지난 5월 3일에 있었던 ‘원·하청 상생협력 MOU 체결’이었습니다.” 원청인 현재중공업과 미포조선의 노력은 물론 하청인 협력업체들의 자구책도 같은 무게감으로 강조했다는 얘기다. 이 지청장은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가야 한다’는 신념을 지금까지 버린 적이 없다.
조선업계의 어려움은 울산고용노동지청 집계에서도 단박에 읽을 수 있다.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울산에서는 80여 개 조선 대기업 사내협력업체가 폐업으로 문을 닫았다. 앞으로도 상당수 업체는 폐업의 문턱을 넘나들 것이다. 지난해(2015년) 울산지역의 임금체불액은 358억원, 근로자수는 8천100여명으로 전년도(2014년)보다 60.7%, 32.8%씩 늘어났다. 주목할 점은 그 절반 정도가 조선업종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업 구조조정 대안 다양하게 마련
S-OIL·대한유화 공사장에 일자리 유도
이철우 지청장은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이 올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그래서 마련한 것이 다각적인 대응방안이다.
먼저, 재취업 전담반을 구성해서 적극적인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매주 고용동향을 체크하고 조선업종 구직자 전담창구를 설치해서 심층상담도 실시할 예정이다. 둘째, 구인수요(求人需要) 발굴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석유화학, 자동차부품업체 등 유사업종 사업장을 중심으로 매월 2회, 유선통화나 직접방문으로 구인수요를 적극 발굴할 참이다.
이 지청장이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말문을 연다. “좋은 소식, 왜 없겠습니까? S-OIL 플랜트시설 추가설치 공사, 대한유화 플랜트시설 공사 등 대규모 공사를 눈여겨보면 용접, 배관 같은 유사한 공정이 꽤나 많은 편입니다. 조선업체 근로자들의 일부라도 이쪽으로 재취업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중입니다.”
셋째, 전직 희망 근로자에게는 전직훈련 기회를 주어 희망하는 직종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넷째, 민·관 합동으로 ‘희망일자리센터’를 설치해서 취업상담부터 훈련, 창업, 취업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능력과 희망에 맞춘 맞춤형 일자리를 적극 찾아주는 일이다. 앞서도 잠시 언급한 것처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고용을 계속 유지하려고 애쓰는 사업체에는 정부 예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은 자제하도록 권유하는 일도 대안 속에 포함시켰다.
임금 쪼개 협력업체 도운 SK하이닉스 노조
울산 대기업 노조들도 그 정신’ 본받았으면
울산이라면 ‘산업도시’란 별명과 함께 ‘노동운동의 메카’라는 별칭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만큼 고용노동지청장의 어깨도 무겁다. 지청장이라면 우선 소신부터 뚜렷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이 지청장은 그런 면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울산은 70년대 초반부터 국내 기간산업을 발전시키며 국가경제 발전을 선도했고, 고용효과가 큰 제조업 비중이 69.0%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도시입니다. 2위인 인천(28.7%)보다는 약 2.4배가 높은 셈이지요. 그러나 고용상황과 노사관계 측면에서는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울산의 노사관계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줄 정도로’ 매우 불안정하다고 본다. 그는 특히 대기업 노조들의 ‘사회적 책임감’을 강조한다.
현대자동차노조, 현대중공업노조를 향해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한 교섭에 집착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협력업체, 비정규직, 청년·중장년 일자리에도 눈길 돌릴 줄 아는 이타적(利他的)인 면도 보여준다면 시민들 그리고 국민들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러면서 경기도 이천의 SK하이닉스 노조를 이타적 노조의 본보기로 예시한다. 이 지청장에 따르면 SK하이닉스 노조는 임금인상분에서 일정액을 선뜻 잘라 기금 33억원을 마련한다. 이에 뒤질세라 사측도 똑같이 33억원을 내놓는다. 이 아름다운 기금은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에 사용된다. “우리 울산에서도 이 착한 마음가짐을 본받는다면 ‘동반성장’이란 말이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닐 겁니다.”
2차례 그만둘까 고심… 지금은 ‘큰 긍지’
이철우 지청장은 노동 분야에서만 32년째 한솥밥을 먹고 있다. 1985년 3월 국가공무원 7급 공채로 노동부에 들어간 것이 공무원 생활의 첫걸음이었다.
그렇다고 딴 마음을 전혀 안 먹은 것도 아니다. 공직생활을 그만둘까 고민하고 망설인 적이 두 번이나 있었다. 1995년 여름 근로복지공단이 처음 설립됐을 때, 그리고 2009년 은행연합회로의 이직 기회가 주어졌을 때였다.
“아주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학도 출신이 행정업무에만 매달리는 공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지요. 30대 중반까지는 일반회사로 직장을 옮길까 고민도 참 많이 했고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공직생활의 따분함, 얇아 보이기만 하던 월급봉투가 유혹의 끈이었다.
그러나 잡념은 그때마다 접어야 했다. 집안의 완강한 반대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었는지도 모른다.
직급이 올라가면서 창의성이 충분히 존중되고 급여도 어느 정도 오르면서 공직에 대한 긍지가 새록새록 되살아났던 것이다. 그에게 공직에 대한 긍지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창의성 발휘와 보람에 관한 실제 사례들이 있었다. 특히 2009년 노조법 개정에 대한 자신의 구상이 받아들여진 일은 ‘공직생활의 가장 큰 보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본부(노동부)에서 노동조합법 개정 실무를 총괄하는 팀장(서기관)일 때의 일입니다.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무한정 지급하는 것을 제한하고 그 외 전임자에게는 노조 스스로 급여를 지급하도록 하는 ‘근로시간 면제 제도’를 만들고 현장에 뿌리 내리게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 제도는 그 뒤 ‘이명박 정부에서 가장 잘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인상적인 현장 경험도 있었다. 1993년 여름 쌍용자동차 임단협 교섭 당시의 일이다. 노사갈등이 극에 달한 나머지 노조가 아무도 정문 출입을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데도 그는 담당 근로감독관 자격으로 당당하게 정문을 통과해서 노사 대화를 주선했다. “끝나고 나선 노조 간부들과 술잔을 같이 기울이기도 했지요.”
“위법·불합리한 단협, 바로잡아야” 소신
이철우 지청장은 지난 5월초, 50여개 사업장 노사 앞으로 단체협약에 위법·불합리한 사항이 있으면 자율적으로 개선하라는 내용의 협조공문을 보냈다. 우선·특별채용, 노조운영비 원조, 과도한 인사·경영권 제한규정을 위법·불합리한 사항의 구체적인 사례로 지목했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 기업들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으려면 빠른 변화에 대한 대응하는 절실한데 일부 기업의 위법·불합리한 단체협약은 기업의 적응력과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소신에 따른 조치였다. 또한 위법·불합리한 단체협약은 정규직 채용 기피와 비정규직·사내하청 확대 등 고용구조를 왜곡하는 주범이라는 그 나름의 인식도 같이 작용했다.
영남알프스가 눈에 선한 등산 마니아
이철우 지청장은 매주 주말, 산이라면 빠뜨리지 않고 찾아 나서던 등산 마니아다. 그러나 요즘 주말은 수원 자택에 머무는 일이 많아 울산의 많은 산들을 다 둘러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마니아답게 ‘영남알프스’라면 눈에 선할 정도는 된다.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 천황봉, 재약산, 억산 할 것 없이 영남알프스 능선이라면 안 타본 곳이 없을 정도다. 지금도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잔영이 있다.
“간월재에 올라갔을 때 산위에 펼쳐진 그 드넓은 평야를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옵디다. 그리고 억새의 그 진한 은빛, 진짜 아름다웠지요. 광활한 넓은 대지에 펼쳐진 은빛 억새는 아마 평생 잊기 어려운 장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태화강변의 십리대밭 길에 대한 찬사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대나무 숲을 걷고 있으면 그처럼 마음이 평온해질 수 없기 때문이라 했다. 울산 찬가는 계속 이어졌다. “제 숙소가 울산대공원 바로 옆인데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넓은 대공원의 숲과 나무와 꽃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와 상쾌한 아침을 선물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대공원을 걸을 때마다 울산시민들이 너무 부럽다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시민들께선 이렇게 아름다운 대공원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4년 연하 박광옥 여사(52)와의 사이에 2녀를 두고 있다. 고려대 노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고, 울산지청 부임 전까지는 안양지청장(2015. 2)을 역임했다. 고용노동부 노사정위원회 차관 비서관(2001. 1)을 거쳐 인력수급정책국 사회적기업과장(2014. 4)에 이르기까지 노동 분야의 다양한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김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