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공화국’과 리셋(RESET)
‘갑질 공화국’과 리셋(RESET)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5.1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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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대형 건설사 오너 아들이 운전사에게 갑질을 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지만 사과로 끝났다. ‘땅콩회항’으로 물의를 일으킨 모 항공사 오너 딸 역시 여론에 떠밀려 구속됐으나 풀려났다. 미스터 피자 회장의 갑질이 최근 화제가 됐으나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갑질로 사회적 평판은 악화됐으나 그 이상의 손해는 없다. 여론이 극도로 악화될 경우 잠시 근신하는 모습을 보인 뒤에 다시 옛 자리를 회복한다. 이처럼 상류층은 자기 이익을 지킬 권력이 있기에 갑질로 평판이 훼손되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 직원을 폭행한 뒤에 “얼마면 돼?”라고 묻는 것은 권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갑질’이란 갑을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인터넷에선 갑의 무한 권력을 꼬집는 ‘슈퍼 갑’, ‘울트라 갑’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갑처럼 군림하려 하는 사람을 일러 ‘갑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널리 알려진 갑질은 대략 이런 것이다. “개인 역량과 조직의 힘을 혼동한다. 한마디로 자신이 잘난 줄 안다. 조직의 이익보다는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도모한다. 을을 하인 부리듯이 대하며, 을이라면 손윗사람에게도 반말을 한다. 자신의 과오를 을에게 떠넘긴다.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 무조건 따르기만을 강제한다. 부탁할 때는 비굴하게 굴기도 하지만 도와줄 때는 끊는다.”

이러한 갑질이 만연해 있다는 최근의 기사들은 꽤 큰 사회적 반향(反響)을 얻었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힘깨나 쓴다는 상위계층뿐만 아니라 중간계층 이하까지 갑질을 저지른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약하다 싶으면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는 갑질을 하고 만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갑질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먼저 상위계층 갑질의 원인은 권력감이다. 그 원천이 무엇이든, 권력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남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남과 다른 특권을 누리려 한다. 하지만 중간계층 이하의 갑질은 ‘불신’과 ‘불안’의 심리가 더 큰 원인이다. 내가 갑질을 하지 않으면, 내 이익이 손해를 보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내가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 상대가 나를 호구로 여기고, 내 정당한 이익을 챙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불신한다.

이는 결국 한국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저신뢰사회’라는 증거다. 내가 착한 행동으로 좋은 평판을 쌓아도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타인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사회가 저신뢰사회다. 언제부터인가 ‘착하다’ 는 말은 ‘멍청해서 자기 이익을 못 챙긴다’는 말과 동의어가 된 지 오래다. ‘불안을 넘어선 강박’, ‘경쟁을 넘어선 고투’, ‘불신을 넘어선 반감’, ‘불만을 넘어선 원한’에 이른 한국인의 의식세계에도 리셋이 필요하다.

성능 좋은 컴퓨터를 잘 사용하다가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내부에 쌓여 어느 순간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리셋(RESET) 기능을 활용한다. 이젠 문제투성이 대한민국을 바꾸려는 노력과 함께 한 번쯤 ‘리셋’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처음으로 돌아가 재정비해야 한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베풂을 좋아한다는 증거는 꽤 많다. 이처럼 남을 돕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한국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서로를 신뢰하는 호혜의 문화야말로 소중한 무엇인가를 갖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연령과 계층을 막론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갑질은 자기파괴적이며 부메랑이 돼 돌아올 뿐이라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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