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도서전’의 경우
‘파리도서전’의 경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5.0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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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려면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알퐁스 도데의 ‘풍차간의 편지’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 이 정도의 책도 안 읽은 사람에게 무기를 맡길 순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규정이다. 유럽 선진국의 중심, 프랑스가 독서를 얼마나 중요시하는 가를 잘 나타낸 예로 보인다.

지난 3월 17일부터 20일까지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제36회 파리도서전’이 열렸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행사에 한국은 주빈국으로 초청 받았다. 파리도서전은 해마다 20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프랑스의 가장 큰 도서문화 행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도서전 개막일에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드레 아줄레 문화부 장관을 대동한 올랑드 대통령은 3시간쯤 머물며 취재진과 관객에 둘러싸인 채 도서전 구석구석을 돌아봤다고 한다. 대통령 참가는 파리도서전의 관행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파리도서전을 찾아온 정치인은 대통령과 문화부 장관만이 아니었다. 첫날인 17일에는 경제부 장관, 그 다음날엔 해외영토부 장관이 다녀갔다. 19일에는 총리가 방문했다. 그 행사에 참석한 한국 출판인들에 따르면, 파리시장의 경우 개막식 전 프랑스 출판인들과 한국 참석자들을 시청으로 초청해 오찬을 베풀었고, 파리시 부시장도 도서전을 찾았다고 한다.

한국의 ‘서울도서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지난해 서울도서전에 참석한 정부 최고위직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었다. 대통령이 서울도서전을 찾는 경우도 드물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한 차례 서울도서전에 참석한 적이 있으나, 서울시장이 서울도서전에 참석한 예는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없다.

파리도서전에 초청작가로 참석한 소설가 황석영씨는 개막식 직후 “프랑스에서는 대통령도 오고 총리도 오는데, 한국에서는 장관도 안 오고 대사도 없다”면서 “이런 식으로 문화를 홀대하고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파리도서전에서 프랑스 정부 관료들을 접한 한국 출판인들은 책과 출판문화에 대한 정부 관계자들의 인식이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고 했다. 파리도서전을 찾은 프랑스 정치인·관료들의 언행이 한국 정치인·관료들의 그것과 사뭇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바로 양국의 차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프랑스 정부는 출판에 대한 여러 가지 지원을 해왔다. 1980년대 초부터 서점에 대한 지원, 이를테면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도서관에 대한 지원을 늘려 어린이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쉽게 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적극 펼쳤다. 대도시뿐 아니라 작은 지역 서점까지 지원을 해 모든 사람들이 어디서나 책을 사랑할 수 있도록 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대한 이런 정책적 지원이 책에 대한 사랑을 낳았으므로 파리도서전도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도서전과는 어떻게 다를까. 이번 파리도서전에 참가한 한국의 작가, 출판인, 취재진은 행사 기간 내내 이 질문을 되뇌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름의 답변들을 내놨다. 그 첫 번째는 한국 정부가 지닌 책과 문화에 대한 생각이 프랑스와는 너무 달라 보인다는 것. 두 번째는 출판인들과 시민들이 책과 도서전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도 달라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 정부가 부르짖던 ‘문화융성’이라는 구호가 슬그머니 사라진 오늘,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오드레 아줄레 문화부 장관의 말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프랑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책을 사랑한다. 정부가 책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원했기에 책 읽는 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 문화는 프랑스의 심장이며 그 중심에 책이 있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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