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후에 오는 것
사랑 후에 오는 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2.1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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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준비도 없이 한 어린 생명을 품에 안았다. 특별히 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품지 못할 이유는 있었다. 자주 떠나게 되는 열흘 이상의 긴 여행도 그렇고 가족들이 습관처럼 너저분하게 정리되지 않은 환경을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난히 동물을 좋아하는 작은 아이가 어린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받아 먼 곳에서 데려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려놓은 이동가방에서 가만히 빠져나온 작은 생명체, 회색빛 눈동자에 날렵하고 검은 몸체의 아기 고양이는 처음 보는 집의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거만하게 도도하게 식구들의 앞을 서성거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낯선 환경에 들어온 아이와 낯선 아이를 느닷없이 받아들여야하는 가족들은 서로 어리둥절할 뿐, 그렇게 어색한 동거의 첫날밤을 맞았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어린 고양이는 애완동물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깼다. 야행성이 두드러졌다. 밤엔 더 민감해지고 활동도 심해 넓지 않은 집안을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했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직 어려서인지 사람 곁을 떠나지도 않았다. 잠시 잠이 들었다가 기척에 눈을 뜨면 옆에서 반짝이는 눈망울로 쳐다보며 앉아 있는 아이를 보고는 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런 날이 계속되었다. 서로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장난도 심해졌다. 창틀과 식탁 선반까지 뛰어오르는 날쌘 행동에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나 사람도 미운 정 고운 정이라더니 그러면서 정이 드나 싶었다. 끝까지 함께 하리라는 굳건한 마음의 결정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 어느새 날카로운 발을 만지고 슬그머니 다가온 아이를 가슴에 안고 쓰다듬고 밤엔 같이 잠이 들기도 했다. 어둠에 반짝이는 눈빛이 무섭기보다 조금씩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랑스런 피조물이 어디서 왔을까 싶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모든 것을 감수해야하는 지금의 상황과 이전의 평온했던 일상과 맞바꿀 수 있을지에 생각이 멈췄다. 쉽지 않았다. 난장판이 된 집안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모래먼지와 먹이와 놀이감이 굴러다니는 집안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다면 원 가족에게 하루빨리 돌려보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생각 끝에 작은 아이 편에 돌려보내기로 한 날, 떠나는 것을 동물의 직감으로 알았는지 이동가방 속으로 넣으려하자 한사코 저항하며 울어댄다. 쳐다보는 눈빛이 애처로워 보내기로 한 마음이 한순간 무너지기도 했다. 눈물이 왈칵왈칵 쏟아졌다. 기차로 떠나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울음소리가 내내 귀에 쟁쟁했다.

우연히 만난 어린 고양이는 그냥 한 마리의 동물이 아니었다. 한 영혼과의 만남이었다. 여리고 어린 생명이 지나간 빈자리가 공허했다.

생명 있는 것들과의 조우는 그 시간이 짧다 해도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다. 좀도둑 들 듯 어느새 마음속에 살며시 스미고 찾아든 사랑이란 감정에 마음을 빼앗겨 본 일이 우리는 더러 있지 않았던가. ‘헤어짐이 슬픈 건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만남의 가치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어느 작가는 소설 속에서 말하지만 비단 사람에 대한 감정뿐일까. 한동안 작은 영혼이 숨 쉬던 자리가 허전할 것이다, 교감하던 눈빛이며 골골거리던 숨소리도 그리울 것 같다. 사랑할 땐 사랑 후에 올 것들을 알지 못하기에 한 방울의 맹독처럼 헤어짐의 아픔을 탄 장밋빛 사랑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이정미 수필가 / 나래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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