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1.1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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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주제로 강의를 해 달라고 하면 10여 년 전부터 제목은 항상 ‘9988124’이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1~2일만 앓다가 죽었으면’하는 바람을 담은 제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99세까지가 아니라 88하게 사는 것이다. 죽음의 직전까지 온전한 내 정신을 가지고 내 사지를 움직여 활동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건강수명인 것이다. 가끔 상갓집에 문상을 가면 고인께서 저녁 잘 드시고 가족들과 말씀도 다 나누시고 주무시러 갔는데 아침에 기척이 없어 방에 들어가 보니 돌아가셨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있다. 전생에 나라를 몇 번 구하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죽음이란 그리 깔끔하지가 않다.

작년 10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6년여 동안 노환으로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시기 1년 전부터는 치매가 와서 자식들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셨다. 돌아가시기 1개월쯤 전부터는 완전와상 상태로 미음만 드실 뿐이었다. 돌아가시기 1주일쯤 전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식사를 거의 못하시니까 비위관을 꽂았으면 한다고 가족의 동의를 구해왔다. 가족회의를 열었다. 누님은 그래도 하루라도 더 사시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다 시도해 보아야하지 않겠느냐고 했고, 형님은 반대를 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후 한동안은 한 번씩 차에 태워 드라이브라도 시켜드리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만 구경하셔도 좋아하셨다. 그리고 식탐이 많으셔서 항상 다음에 올 때는 드시고 싶은 음식을 사오라고 하시고는 맛있게 드셨다. 먹는 낙에 갑갑함을 견디시는 것이리라. 하지만 1년 전부터는 거의 거동을 못하시니까 하루 종일 반 평도 안되는 침대 위에 누워 천장만 바라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식욕을 잃어가면서 즐기시던 음식도 거의 드시지 않아 점차 앙상하게 뼈만 남게 되었다. 드디어 욕창이 생기기 시작했다. 면회를 가도 잠시 아는 척만 하시고는 다시 천장만 바라다보신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이게 산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정신이 들면 진통제 좀 놓아달라고 부탁하라고 하신다. 의료진에 부탁을 해보지만 이미 충분한 양이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통증은 심리적인 것일까?

결국 우리는 비위관 처치에 동의하지 않았다. 의료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쉽게 포기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비위관 처치를 거부한 지 정확히 1주일 만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비위관을 꽂고서라도 한두 달 더 사시고 싶어 하셨을까? 우릴 원망하셨을까? 어머니 연세는 만으로 아흔 살이셨다.

새해 들어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라는 기나긴 제목의 법이 통과되었다. 1997년, 치료를 중단하면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가족의 요청을 받아들여 퇴원을 허용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보라매병원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은 사건을 계기로 존엄사 논의가 시작되었고, 2009년에는 대법원이 혼수상태에서 인공호흡기로 연명을 계속하고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행위의 중단을 결정한 ‘김 할머니’ 존엄사 인정 판결 후 7년만이다. 이로써 환자는 자기 결정에 따라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연명의료 행위를 중단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물론 자기 결정이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라는 형식을 통해서 환자의 의식이 있을 때 미리 작성해두어야 하고,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 환자가 평소에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는 가족의 증언이나 가족 전체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지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경우 의사는 살인방조죄, 환자 가족은 살인죄로 처벌받을 위험이 있어 연명의료 시술을 시작함에 있어 모두가 불편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환자의 삶의 질에 관련된 통증 완화 치료, 영양, 물 공급, 단순 산소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외국에 나가면 집 근처나 마을 근처에 무덤이 있는 것을 흔히 본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있다. 죽음이란 삶의 한 과정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영원한 삶을 생각해보라. 저주가 아닐까?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전쟁에 승리하여 화려한 개선식을 하는 장군 뒤에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는 사람이 따른다고 한다. 삶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요즈음 점차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웰다잉 운동도 삶 가운데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제 나와 아내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야겠다. 자식들에게는 내가 어머니를 보내드릴 때 가졌던 미안함을 느끼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최순호 울산과학대 교수·물리치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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