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구 획정(劃定)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劃定)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1.0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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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정’이라는 낱말 자체가 여러 가지 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먼저, 그 말뜻에서 내 것과 네 것의 경계를 지도 위에 분명하게 선(線)을 긋는다는, 구획(區劃)을 정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적당히’가 체질화되어 있는데 칼로 두부모 자르듯이 선을 그어 구획을 정한다는 것에 정나미가 떨어져 싫다. 진즉 1950년대부터 국민(초등)학교 교사발령을 구획 없이 전국구로 적당히 섞어서 내었으면 지금의 지역감정은 뿌리도 내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무서운,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우리 담임선생님이 다른 지역, 타도 출신이라면 그 지역을 보는 정서가 다르게 자리를 잡았을 가능성이 많다. 필자의 고등학교 선생님들 중 가장 존경 받는 선생님 두 분은 타도 출신이셨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은 다 그럴 줄 알고 지내다가 손해를 본 일도 있다. 그러나 존경하던 그 정서는 지금도 남아 있어 사위가 그 지역출신이다.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가 내 인생의 밥벌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렇다.

우리는 밥을 할 때, 적당히 물을 붓고, 적당히 불을 때어, 적당히 뜸이 들면, 적당히 먹는 사람들이다. 국회의원, 자기들이 무엇인데 이 나라의 어디를 내 것, 네 것으로 나눈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얼마 전부터 사회전산망서비스(SNS)에서는 ‘국회개혁 1000만명 서명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국회의원이라는 제도가 특권만 있지 의무는 없는 것으로 국민에게 비추어져 있고, 국민이 납부한 세금 낭비의 원형으로 인식되고 있어서 그러는 것이다. 이러는 마당에 자기들 챙길 것은, 낙선 할지도 모르는 선거구를 지독하게도 다른 목적을 마음에 두고 챙기며 서로들 버티고 있어 더 보기 싫은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말의 모음조화(母音調和)에 ‘ㅚ’자 소리(획) 뒤에 오는 ‘ㅓ’(정)는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서양말이 넘쳐나고 있어 그 영향으로 아름다운 모음조화가 퇴색되고 있어 안타깝다. 느낌이 오는 우리 시(詩)는 모음조화를 잘 따르고 있다. 모 대통령은 이 낱말, ‘획정’을 발음하기 번거로워 지금처럼 질질 끌게 놓아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정의화 국회의장은 여당과 야당의 선거구 협상에 중재할 진정성 있는 의욕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국회의장의 수준이 신경외과의사수준이어서 정치가의 책임감이 발휘되지 않아서 한탄스러워 다음의 ‘개혁’을 제안한다.

국회의원 수를 100명으로 감축하자는 서명운동(김동길 명예교수 주관)과 관련하여,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는 선거구 확정(確定)을 위해서 ‘적당히’ 한 100명 정도 뽑자는 논거(論據)를 제시한다. 통계학에서는 대표성(representation)을 살리기 위한 표집의 방법으로 무선 표집(無選標集, random sampling)을 우선으로 하는데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표한다고 너무 쉽게 말해서 걱정이다. 국민의 무엇을 대표(represent)하는지부터 분명해야 한다. 아직 분명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서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막연하게 지혜(智慧)를 대표한다고 위안을 삼는다.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는 사람들의 일부는 법에 따라 주민등록을 가장 형식적으로 옮긴다. 법을 교묘히 이용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자기들 편하게 주민등록지를 옮겨, 엉뚱한 곳에서 당선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 입후보자는 마음대로 출마할 곳을 옮겨도 되고, 유권자는 투표할 곳을 옮기면 왜 안 되나? 따져보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정치‘개혁’의 단초가 된다. 유권자도 한 표를 행사할 곳을 입후보자와 똑같이 전략적으로 옮겨도 되게 해야 한다. 예기치 못한 혼선이 빚어질 수도 있으나 무선표집을 대신하는 국민대표의 선출이다.

<박해룡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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