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에서 돋은 가지의 열매가 더 달듯이
고목에서 돋은 가지의 열매가 더 달듯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1.0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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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어본 지가 언제였던가. 그나마 마침 살고 있는 아파트 아래에 초등학교가 있어 등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잠깐 듣게 된다. 동네에서는 아이들의 소리가 듣기 쉽지 않고 삼삼오오 지나면서 떠들고 장난치는 모습을 본 지도 오래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통로엔 아이가 있는 집이 단 한 세대밖에 없다. 대개가 중년을 넘어선 부부세대와 신혼부부세대가 주를 이룬다.

예전 보통의 아파트에선 아이들의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침 등교시간엔 아이들의 인사소리가 복도를 울렸고 베란다 창으로 넘나드는 엄마와의 대화소리는 정겨웠다. 오후 하교 때는 친구들을 몰고 복도를 뛰어올라오는 소리로 웬만큼 시간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다 또 몰려나가서는 해가 저물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어두워져서 들어오는 아이를 야단치는 엄마의 목소리는 늘 익숙했다.

아파트 내에서는 임산부 새댁도 쉽게 눈에 띄었다. 모두들 산달을 물어보고 기억하고 기다렸다. 그러다 출산이라도 하면 아직 보지 못한 아기를 궁금해 하고 보고 싶어 했다. 얼마 뒤 봄볕이라도 쬐러 밖으로 나온 아기를 보고는 모두들 덕담 한마디씩을 건네고 아기엄마는 가까운 이웃 아주머니를 친정엄마처럼 의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풍속도가 많이 달라졌다. 우선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만나기 어렵다. 대신 아파트 내 도로에서 유모차 같은 실버카를 밀고 다니는 노인들을 아침저녁으로 만난다. 심지어 실버카를 밀고 아파트 내 도로를 누비며 걸음운동을 하시는가 하면 어떤 할아버지는 바닥에 그어진 옥외주차장의 주차선을 따라 매일 걷는 운동을 하시는 진풍경도 만나게 된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아파트 입구 도로엔 지루한 오후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 앉은 노인들도 많이 눈에 뛴다. 그들은 더운 여름날엔 시원한 골바람을 찾아 아예 돗자리를 깔고 아파트 어귀에 모여서 밤늦도록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것을 본다.

그야말로 이제는 백세시대이다. 얼마 전 60년을 함께 하신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맞아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였었다. 마침 봄날처럼 따스한 날씨에 모두 모여 맛있는 음식도 먹고 잘 꾸며진 정원에서 오랜만에 가족사진도 찍었다. 행복한 하루였다. 그런데 왜 바윗돌에 걸터앉은 두 분의 모습이 슬프고도 아름답게 느껴졌을까. 왜 모두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을까. 그것은 아마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앞에서 서로에게 대견하고 감사한 기쁨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앞으로 몰려다니며 재롱을 피우는 막내여동생의 어린 조카들이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예뻤다.

아이를 볼 수 없고 아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곳은 적막하다. 미래가 없는 느낌이다. 그리고 노인들이 없는 사회는 무언가 불안하다. 그들의 지난 시간과 그 속에서 빛나는 지혜는 젊은 세대들의 든든한 정신적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 분들이 살아온 시대와 환경의 질곡에서 건져낸 지혜야말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석이다.

여러 가지로 맞물린 복잡한 세상에서 사람과 세대와의 조화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고목에서 돋은 가지의 열매가 더 달듯이 새해는 지난 세대의 자양분을 받아 새 세대들이 더 무성한 가지를 뻗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정미 수필가/나래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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