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영혼(靈魂, soul)을 생각한다
성탄절에 영혼(靈魂, soul)을 생각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2.22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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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일에서 한국의 아줌마 한 사람이 귀신에 씌었다고 하여 이 귀신을 몰아내려다 생명을 잃었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있지도 않은 귀신을 몰아내려다 살아있는 사람의 목숨을 잃어버린 셈이다. 뒤에 따지고 들겠지만 귀신을 몰아내려던 일이 종교적이건 미신이건 간에 성탄절을 맞으며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런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냉정하게 검토해보기로 한다. 결론부터 제시하면 귀신,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사태를 두고 천주교, 기독교에서는 구마(驅魔)의식이라는 어려운 한자어를 쓰며 제대로 된 의식이 아닐 것이라고 한다. 몇 년 전까지 영화와 소설로 관심을 끌어 퇴마(退魔)라는 말을 썼으나, 퇴마는 종교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다. 하여간 둘 다 나쁜 귀신을 몰아낸다, 물러가게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집안에 미친 사람, 정신분열환자가 있으면 귀신이 씌어서 그렇다고 하여 회초리만한 복숭아 가지를 꺾어다 마구 때리는 일이 있었다. 이 일로 죽는 일은 없었으나 실성한 사람이 정신을 차린 일도 없었다. 필자가 학질( ?疾)에 걸렸을 때(1947년), 나쁜 귀신이 들어서 그렇다고 큰 길 바닥에 뉘여 놓고, 그 위로 소를 지나가게 한 일이 있었다. 소를 보고 귀신이 무서워 떨어져 나가 학질을 낫게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만 반쯤 기절하였으나 귀신은 떨어져 나가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 결국은 키니네를 먹고 치료를 받아 살아난 일이 있다. 이제 설이 되면 차례(茶禮)를 지낸다. 이 차례는 일종의 제사이다. 이 제사에 조상들이 모두 와서 조금이라도 차례 상의 음식을 먹고 간다면 제사 지낼 자식들 없다고들 한다. 오히려 자손들이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덕담을 나누며 음복(飮福)한다. 조상이 내려준 복을 마시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 전에는 음주운전에 걸렸을 때, 제사 지내고 음복했다고 양해를 구하면 용서를 받기도 했다.

귀신이 있다면 무엇이 존재한다는 틀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측정되어야 한다. 유명한 아이슈타인의 에너지(E=mc²)가 뉴턴의 중력(重力)에서 보이지 않는 그 힘으로 측정되었을 때, 에너지 존재의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중력은 물체처럼 볼 수 없어도 존재하는 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자력(磁力), 전력(電力)을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측정할 수 없으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귀신을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독일에서는 현재도 종교적으로 구마의식을 행하고 있다. 독일이 학술적으로 구조주의(structuralism)의 총본산격인데 구마의식을 용인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보면 과학과 종교의 공존, 양립을 받아들이게 된다. 아인슈타인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신을 친구에게 보낸 데서 이런 아이러니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의 상상할 수 없는 막연한 무서움에서 해방되기 위해 영혼이 있다고 믿어두고, 현재 살아 있음에 충실 하는 마음가짐을 성탄절에, 부처님 오신 날에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영혼에 관한 실화 하나를 소개한다.

모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실에서 수련의 과정을 밟고 있던 조교 한 사람은 평소 야심한 때에도 혼자 실습실에서 공부를 하였다. 친구들이 실습을 끝낸 시신(屍身)들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도 귀신은 무슨 귀신? 하면서 시원하여 좋다고 실습실을 애용하였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아침에 그 조교가 실습실 문 앞에 엎어져 죽어있었다. 해부학 전공서적은 흩어져있고, 두 손은 손톱이 떨어져나가 피로 범벅이 되었고, 두 눈은 크게 뜨고 공포의 흔적이 그대로였다. 조교가 입고 있었던 가운의 뒷자락이 실습실 문고리에 걸려 있었다. 귀신이 잡고 있었다.

<박해룡 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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