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이 앉아있는 응접의자와 집무테이블 뒤에 10폭짜리(?) 한글과 한자가 불평등하게 쓰인 글씨병풍이 그대로 나왔다. 여기서 불평등하다는 표현은 이 병풍 사진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여기가 대한민국 국회의장 집무실인지 의심이 생길 정도이다. 예서(隸書)로 된 큰 글자 옆에 한글 궁체(宮體)로 된 작은 글자들이 쓰여 있다. 굳이 누구의 작품인지는 알 필요가 없다. 다만 신문의 사진으로만 보아도 한글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읽을 수 없고, 천자문(千字文)세대의 끝자락인 필자도 한자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사실 전공분야의 책이 한글로만 된 책보다 최소한 한자가 병기된 책이 쉽게 읽혀지는 세대임에도 그렇다. 정치하는 사람의 집무실이니 그저 세상사 경륜에 관한 것일 게다는 짐작만 가능한 내용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신경외과 의사다. 신경외과의 대표적 치료분야는 뇌와 척수의 신경계통인데, 언제 한문공부를 하여 병풍의 글 내용을 새겨볼 수 있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한문으로 된 뇌신경 의학서적을 연구했으면 필자가 정중히 사과해야 마땅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1948년생, 1945년 광복후에 태어났다. 꼭 병풍의 글 내용이 목민심서(牧民心書), 배트남의 호지명이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고 해서 약간의 긍지를 갖았던 그 책의 내용이어서 항상 옆에 두고 싶다면 한글을 크게 쓰고 그 옆에 한자를 작게 쓴 병풍으로 만들어 세워두어야 한다. 의전상 외국의 정치인들이 국회의장을 방문했을 때 중국의 공산당 서기의 집무실을 방문한 것으로 오해되지 않게 해야 한다.
최근 순전히 개인용무로 중국의 장가계(長家界)를 다녀왔다. 일정 중의 일부로 관광이 있어 하얼빈에 산다는 조선족 청년의 안내를 받았다. 서툰 우리말로 장가계의 여러 시설이 세계 최고, 최장 소리를 여러 번 들으며 이 사람이 정말 우리 동포인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다른 안내자들도 조선족 사람들이라며 이 사람들이 한국 관광객들을 갖고 논다는 식의 말을 비밀스럽지도 않은 듯이 지껄이는 것이었다. ‘장가계로 돌려서 아이구구하게 만들까?’를 자기들끼리 서로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장가계의 벼랑길을 많이 걷게 하여 다음날 버스에 타고 내릴 때, 허벅지가 아파서 ‘아이구구’소리를 지르게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뜻이다.
강제로 쇼핑 가게에 들렸다. 게르마늄 제품들을 광고하는데 깜작 놀랄 사진이 가게의 광고 직원 머리 위에 걸려있었다. 광고를 다 듣고 ‘광고 사진의 저 사람, 한국에서 한 동안 방송에 나와 착한 식당 취재와 소개로 유명했었는데, 지금은 불미스런 일로 방송에 나오지 않으며, 초상권 등등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알려주었는데 고맙다는 말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불쾌해할 만큼 인상을 쓰며, 그 사람이 문제를 일으킨 것은 억울한 일이라는 식의 변명만 늘어놓았다.
아울러 우리 가이드가 이 가게에 사람들을 데리고 왔었다는 증명으로 도장을 찍어주면 일정 금액을 주는데 그 도장도 찍어주지 않고 그냥 보내었다. 중국의 다른 관광지를 다녀온 친지들에게 장가계 사연을 이야기하며 조선족 가게와 가이드의 예절을 물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온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다른 관광회사 책임 직원의 말을 빌려 결론을 내려주었다. 곰곰 생각하니 교포 2세, 3세들에게 너무 동포의식으로 뭘 기대하고 있는 내가 바보였다. 그들은 그냥 중국 사람으로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관광 온 사람들에게 돈만 벌면 그만인 것이다. 위선적 동포의식으로, 허풍스런 거들먹거림으로 행세하지 않으면 된다.
<박해룡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