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산책]너무나도 풍족한 사회, 부족한 것은?
[인문학산책]너무나도 풍족한 사회, 부족한 것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1.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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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집에 인터넷TV를 연결했다.

주로 SNS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접하는 입장에서 굳이 TV가 더 필요한 것이냐고 몇 번 고민했지만 보통 사람들이 접하는 세상 감을 놓치는 듯하기도 하고, 간혹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이야기할 때면 소외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설치한 TV는 100개가 넘는 채널을 주었고 정말이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 즐겨찾기 채널을 등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렇게 물질적, 문화적으로 풍족한 현대 사회에서도 보통 사람은 3가지가 부족하다고 한다.

일단 ‘시간’, 그리고 상품을 선택하기엔 항상 부족한 ‘돈’, 그리고 타인을 사랑할 ‘마음의 여유’다. ‘돈’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도 ‘시간 여유’가 생기면 그 시간을 때우는 것으로는 아주 적당해 보였다.

화면 안에는 예쁘고 멋지고 고급스러운 연예인들이 나왔고, 그들은 풍족하고 마음 씀씀이도 여유로웠다. 미혼의 연예인들끼리 서로 관심을 보이고 환심을 사기 위한 애정표현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실생활에서는 이루기 힘든 일들이 화면 속에는 그득했다. 현실에서는 도달하지 못하는 일종의 ‘판타지’나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현대인들은 바쁜 생활 속에서 간혹 시간이 나더라도 그 시간마저도 온전히 내 시간이 되지 못한다. 정교하게 발달해 있는 상업적 문화산업들이 우리들 여가 시간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유혹하기 때문이다.

이런 선택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고 당신 품격을 높여주고 이런 선택이 당신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광고한다. 행복, 품격, 감동과 즐거움이 그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할 돈은 언제나 부족하고 일시적으로나마 그런 감정에 닿을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소비선택을 요구받으며 우리는 서서히 중독된다. 자기 스스로 내키는 대로 여행을 떠나거나 직접적으로 체험할 기회는 멀어지고 부차적이게 된다.

IMF를 통과한 우리에게 있어 가장 큰 공포는 생존에 대한 공포다. 생존 위협에 내몰려본 사람들은 생존에 필요한 기능에 자신을 맞추려고 발버둥을 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무한경쟁으로 내몰린 사람들은 무슨 방법이든 승자가 되는 것이 우선이라 그전에는 부끄러움이었던 개인 이기심과 탐욕을 드러내는 것도 이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되었다.

패자에겐 아무런 안전조치가 없는 세상을 경험해 본 사람들에게 불안은 상시적인 것이 되었다.

이런 변화는 우리만 겪는 일이 아니었다. 미국사회도 2002년 행해진 직장 내 절도사고와 사기피해액이 국가 GDP의 6%에 해당하는 6천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액수는 미국 직장인 1인당 4천500달러를 훔친 게 된다.

직원 사기를 감시하느라 발생한 사업손실이 1994년과 1998년 사이에 두 배로 증가했단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08년 반부패활동 NGO인 한국투명성기구가 2008년 전국 중고생 1천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반부패 인식 조사 결과가 이렇다.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 부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약 32%), 나를 더 잘 살게 해줄 수 있다면 지도자들이 불법행위를 해도 괜챦다(약 43%), 나를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약 18%). 이런 결과는 곧 한국사회가 범죄자와 예비범죄자들한테 탈탈 털려 붕괴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결과만 중요한 사회. 소득 차이에 의한 빈부의 격차,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몰린 차별, 문화소비에 대한 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사회시스템이나 사회연대 힘으로 풀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정글과 같은 사회가 될 것이다.

존속살해, 고독사, 자살 등은 비일비재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소외된 자에 대한 복지나 배려 등 사회안전시스템을 만들고 공동체문화를 복원하려는 노력은 사치나 과소비가 아니라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다. 언론이 정글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단순히 선정적으로 보도하기만 하면 안 된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고 용기 있게 제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이동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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