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 레오는 여행하는 순례자들의 하인, 서번트로 그들과 동행한다. 레오는 여행길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하며 순례자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지원한다. 그러던 중 레오가 순례집단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고 순조롭기만 하던 여행이 이때부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여행 내내 단순한 심부름꾼 같았던 존재가 사라지고 난 뒤 순례자들은 결국 레오가 자신들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정신적 지도자, 훌륭한 리더였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서번트 리더십은 무조건적인 명령보다는 신뢰와 믿음으로 구성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리말로 바꿔보면 우렁각시 같은 역할을 도맡아하는 것이다.
조직의 리더가 아랫사람을 부리지 않고 마치 사랑하는 애인처럼 관심을 갖고,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보살피며 아껴주는 세심함을 보여주는 데서 최고의 리더십이 발휘된다. 진정한 리더의 권위는 아랫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다른 구성원들이 나를 딛고 앞으로 뛰어나갈 수 있도록 기꺼이 내 등을 내어주고 든든한 징검다리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 이제 서번트 리더십은 이 시대 모든 조직의 발전전략이자 리더가 반드시 갖춰야할 덕목이 아닐까 생각된다.
얼마 전 기대하지도 않았던 감투 하나를 쓰게 됐다.
전국 226개 자치단체, 2천898명의 기초의원을 대변하는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에서 사무총장직을 맡은 것이다.
비록 1년의 짧은 임기지만 ‘지방자치가 발전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는 신념 아래 풀뿌리민주주의가 제 역할을 하고 전국 각 시군자치군의회가 서로 화합하는 데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다.
이처럼 협의회 내·외부적으로 궂은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중책이기에 감투를 썼다는 기쁨보다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속 주인공 ‘레오’가 생각나 양어깨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무엇보다 전국 곳곳 생활정치의 최일선에서 밤낮없이 뛰고 있는 우리 기초의원들이 의정활동을 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바라지해야 하기에 당장, 그들의 하인이자 우렁각시로 임기 1년을 채워나가려 한다.
그 속에서 ‘서번트 리더십’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하고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 되리라는 기대감과 설렘도 가져본다. 1년 뒤 오늘을 되돌아보며 ‘나는 진정한 리더인가, 나는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확신에 찬 “예스”란 대답을 하길 기원하면서….
귓전을 때리는 말매미 소리가 마치 폭염경보를 알리기라도 하듯 온 도시가 가마솥이다.
숨이 턱턱 막히고, 뜨겁다 못해 원망스럽기만 한 뙤약볕이 온종일 지치게 하는 한여름이지만 그래도 8월이 좋은 이유는 바쁘게만 달려온 우리 인생에서 휴가라는 작은 쉼표 하나 자리하기 때문은 아닐까.
올 여름 휴가는 시원한 계곡물과 가슴 뻥 뚫리는 바다바람 대신 내가 쓴 감투의 무게와 책임감을 상기하며 조용한 방에서 ‘레오’와 다시 만나야겠다. 그래서 그가 가르치고 있는 ‘섬김’의 리더십을 곱씹어 볼 요량이다.
<김영길 울산 중구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