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시선
두 개의 시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5.0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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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서른에 접어든 아들 녀석이 부쩍 사회문제에 관심을 보인다. 부모에게 제 사생활 이야기도 잘 하지 않는 녀석이 세월호 1주기에 열린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집회와 성완종 리스트에 대처하는 정치인에 대해 분노를 터뜨린다. 아들의 말에 의하면 집권세력을 대놓고 싸고도는 몇몇 종편방송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며, 세월호 추모 집회에 인터넷 TV와 전혀 다른 지상파 언론보도를 접하곤 헛웃음을 짓는다. 어른들은 나라를 엉망으로 만드는 저런 당을 선거 때마다 왜 찍어주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들의 돌발질문에 젊은 애들의 투표율이 낮으니까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느냐고 했더니 2, 30대가 5, 60대 어른들과 쪽수에 밀리는 거 모르냐며 되묻는다. 네 나이 때는 정치, 사회적으로 비판적인 생각을 할 시기라고, 엄마도 젊어 한때 너 같은 생각을 했지만 어른이 되면 대부분 보수적이 된다고 얼버무렸다. 엄마의 동문서답이 제 딴에 거슬렸던지 저와 엄마의 생각이 너무 다르다고 고개를 젓는다.

솔직히 말하면 아들의 느닷없는 분노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부끄러웠다. TV화면에 도배질 하다시피 나오는 정치인들, 이런 어처구니없는 나라꼴을 만든 위정자들을 보며 내가 욕할 자격이 있는지. 속으로는 뜨끔했지만 아들에게 어미다운 비겁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세상을 바꾸는 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이 따른다고 했다.

그 희생으로 이만큼 잘 살게 된 게 어디냐고 했더니 엄마의 그런 말이 사태의 본질을 흐린다며 오히려 나를 나무란다. 아들이 갑자기 세상정의를 부르짖는 투사라도 될까 싶어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각자 자기 맡은 일을 묵묵히 하며 사는 게 세상을 바꾸는 지름길이니 네 앞가림이나 잘 하라는 꼰대 같은 소리만 지껄였다. 순간, 쏴한 침묵이 거실에 감돌았다.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너무나 민감해서 함부로 대화의 주제로 삼으면 안 된다더니 저녁밥 잘 먹고 나서 아들과 괜히 얼굴 붉히는 꼴을 만들고 말았다.

정보의 창구가 다르니 아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인터넷 매체는 신뢰하면서 지상파 언론은 믿지 않는, 아니 더 이상 믿으려 하지 않는 아들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말로만 듣던 세대 간 갈등을 몸소 겪었다.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른인 내가 통해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아들과의 해프닝은 어떤 정치적 성향도 없는, 막연히 나라를 걱정하는 소시민의 푸념으로 일단락됐지만 어찌 내 자식뿐이겠는가.

젊은이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의 나락은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기성세대들도 그들의 인내심과 책임감이 우리 때보다 훨씬 덜하다고 공공연하게 반감을 드러낸다.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하는 어른들과 포기와 원망을 먼저 알아버린 청춘들의 깊은 자괴감을 어찌해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자 목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한편으로는 세상일에 귀를 기울이며 엄마에게 제 소신을 말할 줄 아는 녀석이 대견해 보였다. 어찌 보면 세대 간 갈등은 당연한 게 아닌가. 젊은이가 못 보는 눈이 어른에게 있고 어른들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정의감이 그들에게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듯 같은 두 갈래의 시선이 잘 어우러져 서로의 세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훨씬 더 관대할 수 있을 것이다.

모처럼 나눈 아들과의 대화는 결론 없이 끝났지만 그날 밤 나는 잠을 쉬 들지 못했다. 아들의 신랄한 비판에 우물쭈물,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려 놓고선 개념 없는 엄마가 돼버린 건 아닌지. 너와 나의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끝장토론을 펼쳐보면 잃어버린 서로의 신뢰감을 회복할 수 있을까.

<박종임 수필가, 나래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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