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오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5.0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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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르... 하르르...

만개한 벚꽃이 눈앞에 흩날리던 기억.

계절은 이미 봄의 한가운데로 깊숙이 들어섰다. 가로수 느티나무잎들이 꽃들의 바통을 받고 작은 잎들을 펼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거리는 무성한 신록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이제 이른 여름을 예감이라도 하듯 몇 발자국 그늘 속으로 걸음을 더 옮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중년이전엔 봄을 싫어했다. 동면하듯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겨우 풀어보자 싶으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꽃샘바람과 삼월쯤의 심술스런 늦추위 때문에 봄다운 봄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다 봄이 갑자기 짙어지면 병아리 졸듯 나른해지는 몸과 아지랑이 피듯 몽롱해지는 마음 때문에 그때마다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봄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게 된 것은 아마 중년에 들어서면서였던 것 같다. 새벽이 하루의 시작이듯 1월이 아닌 봄이 한 해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아직은 추위가 성성한 이월쯤부터 벌써 봄을 기다리고 찾기 시작했다.

길을 가다 만나는 나뭇가지의 잎눈 꽃눈을 멈춰 서서 살피고 만져보고 시멘트 돌 틈 사이에서 피어난 여린 풀들을 유심히 들여 다 보곤 하는 것이다. 그러다 삼월이 오면 어느새 아파트 양지쪽에서부터 시작되는 봄의 서곡을 듣게 된다. 그럴 때마다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신비함에 귓불을 스치는 바람마저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마치 우주의 혼돈(카오스)에서 생명이 시작되듯... 당연한 이치로 알고 무덤덤하게 맞던 한계절의 신비는 새삼스러운 감동이었다. 그러나 천지에 만개한 벚꽃잎이 밤사이 비바람에 화들짝 쏟아져 내리듯이 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청춘처럼 짧고도 애틋한 시간임을…… 다시 필 수 없는 인간의 시간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싶다.

지난 4월 근 열흘간의 해외여행에서 벚꽃이 필 즈음 돌아왔다. 그런데 채 여독도 풀리기 전 친구들의 부름에 바로 다음날부터 꽃구경에 나섰다.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꽃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만고불변의 이유 하나로 몸의 피곤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친구와 가족과 함께한 시간들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알알이 보석처럼 그 아름다운 순간순간들이 내마음속에서 빛나고 있다. 아니 벌써부터 꽃 진 자리에 추억 같은 씨방이 단단히 자리한 느낌이다.

젊은 날의 고단함과 힘듦은 그래도 달콤했다. 그러나 솔직히 지금은 조금은 덜 힘든 소소한 기쁨의 잔구슬을 많이 꿰고 싶다. 그건 고통의 큰 산을 넘길 자신이 이젠 많이 줄어든 탓이리라.

지난주는 또 복사꽃구경에 나섰다. 설렌 듯 피어난 분홍빛 복사꽃밭 밑에서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벌써 오월,

이젠 신록이 좋다. 재빠르게 피고 지는 화려한 청춘의 꽃도 좋지만 잔잔히 작은 잎을 펼치는 그 생명의 푸른 힘이 좋다. 신록을 바라보면 진정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듯하다.

오월!

금아 피천득은 <오월>이란 수필 속에서 ‘내 나이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라고 오월을 노래하고 있다.

오월엔 더 행복해지자.

이정미 수필가·나래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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