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봄
고향의 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4.20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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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긴 해도 올해는 봄이 좀 빨리 왔다. 거기에다 봄꽃들이 한꺼번에 꽃방을 터뜨려 마을은 거대한 화원이다. 담 너머, 환장하게 눈부신 살구꽃과 목련은 밤에 불을 켜지 않아도 될 성싶다. 언덕배기의 흐드러진 개나리꽃은 금방이라도 노란 물감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고, 산비탈과 골짜기는 진달래와 산수유를 수놓은 치마를 둘러 입은 것처럼 화사하다.

모처럼 마을이 깨어 있다. 길가며 모룽지마다 낯선 자동차의 모습이 줄지어 서 있는 가운데, 여기저기 봄나물을 뜯으러 나온 사람들로 마을이 꽉 찬 느낌이다. 논갈이도 거의 끝나고, 잡초가 발 디디기에 앞서 밭들도 저마다 약속을 위한 단단한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종일 거름을 나르고 흙을 일구느라 경운기의 호흡도 거칠어졌다. 도랑물 소리도 한층 높아졌고, 겨우내 보이질 않던 송사리와 피라미들의 유영이 한가롭다. 찌르레기, 직박구리, 딱새, 박새, 참새, 뱁새 등 텃새들은 둥지 짓고 새끼 치기에 하루해가 짧아 보이고, 들판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앞 다투어 잔치 준비에 한창이다.

마을은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그린벨트에 속해 있어 비교적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전형적인 농촌이어서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은 편이다. 본래 창원 황 씨들의 집성촌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떠나고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산다. 울주군의 범서읍과 두동면의 경계를 이루는 국수봉 자락의 옥녀봉 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은 크게 윗마을인 우리골과 아랫마을인 고장등으로 나뉘어 70여 가구가 살고 있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대여섯 가구가 살았던 문고개와 쟁골은 당시 정부의 이주정책에 의해 비워졌다가 근래 다시 사람들이 들어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면서 오지로 통한다. 골이 깊고 오염의 근원이 없어 봄이면 지천으로 돋아나는 갖가지 산나물과 약초, 가을이면 울창한 산림에서 나오는 송이와 도토리 등은 마을의 또 다른 특징이다. 특히 일급수에만 서식한다는 민물가재와 퉁가리가 예전 못지않게 살고 있을 만큼 그야말로 청정지역이다.

누구에겐들 고향만한 정겨움과 그리움이 또 있을까. 여우도 죽을 때는 자기가 태어난 산천을 향해 머리를 누인다고 했던가. 올봄에는 반가운 소식이 하나 전해져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그동안 빈 집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사십년 전 머슴살이하던 뒷집 아재가 곧 귀향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잠시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식구들과 함께 마을에 정착한다니 얼마나 환영할 일인가. 그래서 그 집 살구꽃이 올봄 따라 눈시울이 그리 붉었을까 싶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 진학도 못하고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던 그는 맘씨 좋고 힘이 장사였다. 새벽을 알리는 것은 수탉 울음소리가 아니라, 그의 장작 패는 소리였을 정도로 부지런했다. 마을의 궂은일이며 성가신 일에도 앞장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나뭇짐이나 볏짐도 보통 사람의 두 배나 되었으며, 힘들고 고된 농사일에도 늘 콧노래가 떠나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곁에만 있어도 왠지 모르게 신이 나고 즐거웠다.

빨리 그가 왔으면 좋겠다. 다소 가라앉은 마을의 공기를 다시 그가 흔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기회가 된다면 그간 그가 살아온 내력을 귀 기울여 듣고 싶고,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고 싶다. 더 나아가 그가 그토록 부러워하던 앵두나무 몇 그루를 선물하고 싶고, 뻘냄새 가득 안고서 강둑에 앉아 밤하늘의 별에 한없이 젖던 그의 눈빛을 다시 훔쳐보고 싶다. 또 기회가 된다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그날 밤에, 왜 하필이면 그런 날 밤에 한 마디 말도 없이 마을을 떠나야만 했던 까닭도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돌아와 주어서 고맙다고 절하고 싶다.

올 봄에는 왜 꽃들이, 질세라 서로 다투어 피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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