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지는 이유에 대하여
피고 지는 이유에 대하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4.1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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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성이다. 난리다. 꽃이 피는 자리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주말이면 극에 달해 오가는 길이 막힌다. 그래도 간다. 그 꽃들에 환장이다.

뉴스도 연일 다투어 상춘객의 이야기를 도배한다.

이해한다. 이해하고말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데 그 호시절을 놓치면 되겠는가?

어제도 그랬다. 지인들은 꽃 잔치 가자고 꼬드겼다. 마음이야 꽃자리 펴고 싶었지만 4월은 참기로 했다.

기억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이다. 꽃들은 피는데 마음이 왜 이리 어수선한지 모르겠다.

특히 꽃비로 내리는 벚꽃을 보고 있을라치면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몇 해 전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내 친구가 있다. 벌써 수 년 전의 일이건만 그는 아직도 그 때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를 만날 때마다 난 그의 얼굴에서 그늘을 읽는다.

누구에게나 기념일이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그 기념일조차 외면하고픈 상처가 있다.

서양인들은 ‘새가 노래한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새가 운다’라고 말한다. 극명한 정서의 차이다.

생의 한복판에서 누군가를 잃어버린 경험은 평생 한이 된다. 그게 자식이라면 더할 말이 없어진다.

누군가는 ‘자식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며 ‘이제 그만 잊으라’ 한다. 참 근사한 말이다.

언어유희도 이 정도면 점입가경이다.

봄은 유혹의 계절인 것이 확실해졌다. 겨울의, 아니 잊고 싶었던 그 시린 세월을 덮을 좋은 시간 아닌가?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최면을 걸 것이다. 이제 그만 하자고. 잊자고.

난 바다가 근무처여서 일상이 바다다. 그 바다에서 요즘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조금이라도 날이 흐려지면 통증이 찾아온다.

나하고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한 일들이 엄습해 오는 것이다. 거대한 파도처럼…

시쳇말로 ‘바다 사나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의 한결같은 말은 ‘매일 바다로 나가는 것은 삶의 한 복판이 아니라 죽음의 매순간을 목도하는 아슬아슬함’이라는 말이다.

이 말 속에 담겨져 있는 바다, 그 쓸쓸하고 아픈 삶이 4월에 겹친다.

난 4월엔 꽃이 피든 지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지만 남겨둔 슬픔에 대해선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주의와 주장만 난무하는 시절엔 슬픔만이 힘이다.

‘피고 지는 이유’는 자명하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어깨가 되고 싶다.

얄팍한 시를 쓰는 시인의 위로는 가련한 밥상이 될 것이지만 따뜻한 밥 한술은 나누겠다.

‘아프지 마라’는 말은 도저히 위로가 되지 않는 4월.

그 4월이 지나면 5월이 올 터인데 이는 또 어찌 감당할 것인가?

시 한 편 우선 여기 두고 간다.

-피고 지는 이유에 대하여-

지난 해 봄 꽃놀이 함께한 네가 / 오늘은 무덤가 꽃으로 피었구나 // 너무 쓸쓸해서 견딜 수 없어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너의 곁에 누웠다 / 한기에 쫓겨 일어난 오후, 햇살 이불이 되레 날 덮었구나 / 펑펑 울고 간다/ 더워서 너무 더워서…

<졸시 ‘피고 지는 이유에 대하여>

<이기철 인문학서재 몽돌 관장/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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