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이웃 절에 기거하는 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마을에 내려왔습니다. 스님은 마을을 돌다 예쁜 처녀와 마주치고 첫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스님은 염주를 수없이 세며 머리를 흔들었지만 처녀의 잔상은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스님은 무엇에 홀린 듯 처녀의 집 앞에서 염불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처녀가 공양미를 들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처녀가 공양미를 바랑에 넣으려는 순간 스님은 그만 처녀의 손을 텁석 잡고 말았습니다. 처녀는 놀라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지만 스님은 처녀에 대한 번뇌를 주체할 수 없어 동네를 맴돌 수밖에 없었습니다.
뜻밖에도 다음 날 스님은 처녀가 강가로 빨래를 하러 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스님은 몰래 처녀의 뒤를 밟았습니다. 그리고 벼랑 위 덤불 속에서 처녀가 빨래하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았습니다. 빨래를 주무를 때마다 보일락 말락 하는 처녀의 젖가슴을 바라보며 스님은 처녀에 대한 애간장이 절절해 가기만 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처녀는 빨래터에서 벌떡 일어나 선바위 쪽을 향했습니다. 스님도 살금살금 처녀의 뒤를 따랐습니다. 처녀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하나씩 하나씩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치마저고리도 벗고, 버선에 속옷도 벗었습니다. 처녀는 선바위를 흠칫 올려다보고는 발아래 짙푸른 백용담에 자신의 몸을 맡겼습니다. 처녀의 자태에 넋을 놓고 있던 스님은 더 이상 자신의 욕정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은 깊은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처녀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처녀의 몸을 힘껏 끌어안았습니다. 그 순간 마른하늘에 벼락을 치며 선바위 주변의 푸른 물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습니다. 처녀와 스님은 나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들의 몸뚱이는 소용돌이를 따라 밑으로 밑으로만 가라앉았습니다.
백용담에 살던 흰 용이 노한 것일까요? 용의 시기와 질투의 화신이 발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용은 순결한 처녀를 범한 스님을 구렁이가 되게 하여 백용담에서 쫓아냈습니다. 백용담에는 흰 용과 처녀의 영혼이 살고, 쫓겨난 구렁이는 백용담 주변을 서성이거나 백천(현 구영교에서 문수산 쪽으로 난 작은 내)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후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선바위 주변에는 처녀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이 울음소리를 듣고 백천에 살던 큰 구렁이는 물살을 가르며 죽을힘을 다해 처녀의 영혼을 만나러 간다고 합니다. 이들은 선바위 꼭대기에 올라 살아생전 나누지 못한 절절한 사랑을 나눈다고 합니다.
이들의 사랑이 백용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선바위 주변은 온통 물굽이가 솟아오르고 소용돌이가 치며 큰 비가 오거나 가뭄이 들어 강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은 아름다운 처녀의 영혼을 기리고, 백용담에 사는 흰 용의 노함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서 백일위령굿을 지내기도 하고, 가뭄이 지속될 때에는 백용이 승천하여 비를 오게 할 수 있도록 기우제를 지냅니다.
지금도 선바위 주변에서는 수영을 하던 사람들이 해마다 소용돌이에 휩싸여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백용이 남자와 처녀의 영혼이 만나는 것을 시기라도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민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술과 안주를 올리고 백용에게 개인의 소원을 빌기도 합니다.
【에필로그】= 이 글은 필자의 새로운 ‘창작’ 노력의 결실이다. 필자는 예부터 내려오는 ‘선바위 전설’이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고 거칠게 느껴진다고 여긴 나머지 손질(각색)할 필요를 느꼈다고 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