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덫
망각의 덫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3.0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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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을 지나 봄이 코앞이다. 그렇듯 집집이 대문이며 기둥마다 입춘방(立春榜)이 나붙은 지 오래지만 올봄은 왠지 봄이 봄 같지 않고 씁쓸하기만 한 것은 지나친 나만의 사유일까.

입춘방으로 쓰는 글귀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쓰는 게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과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이다. 전자는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긴다’는 의미이며, 후자는 ‘나라를 잘 다스려야 백성이 평안하고, 그리하여 집집마다 먹고 사는 일에 부족함이 없이 생활이 풍족하다’는 의미로 기원의 뜻이 담겨 있다.

또 다른 입춘방으로 ‘거천재 래백복(去天災 來百福’과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災從春雪消 福逐夏雲興)이라고도 쓰는데, 전자는 ’온갖 재앙이 떠나가고 모든 복이 들어온다‘는 의미이며, 후자는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은 여름 구름처럼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들 입춘방이 올봄에는 그리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기원의 뜻으로 비추면 이해가 가지만, 국가경제는 여전히 불안하고 청년실업률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픔에 허우적대고 있다.

더군다나 지난 해 봄의 세월호 참사로 국민에게 안겨준 상처와 절망감은 아직도 봄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6일 검찰은 세월호 침몰사고 수사 결과 발표에서 ‘세월호 침몰 원인이 무리한 구조변경과 과적에 따른 복원성 악화 및 조타수의 미숙한 운행으로 침몰했다’고 결론을 내리며, 잠수함 충돌설, 폭침설, 국가정보원 개입설, 구조활동 고의 지연설, 유병언 정·관계 로비설 등 여러 가지 의혹을 부정했다.

따라서 이를 믿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지만 다시 돌이켜보건대 세월호 참사는 절망 속에 절망을 낳은 비극 중 비극이었다. 절망은 어떤 희망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부질없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절정에 이르는 법이다. 우리는 여러 의혹에 앞서 세월호의 선주, 선장, 일부를 제외한 선원들이 사람의 생명을 돈보다 크게 여겼으며, 감독기관의 관련자들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사고 이후 해양경찰을 비롯한 관계당국의 안일한 자세와 대응에 절망했으며, 공적 영역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정부와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 책임자들의 무능과 언행에 절망했다.

당시 정부는 사고 직후 한심할 정도로 갈팡질팡, 오락가락, 우왕좌왕, 허둥지둥하며 국가란 존재에 대한 의문마저 들게 했다. 더 나아가 ‘공감능력 부재’ 수준을 넘어, 유가족들이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드러낸 분노의 절규에 대해 미개한 작태로 보는 시작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적잖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과 국민적 분노를 국민통제와 정략적 관점에서만 이해하고 우려하는 망언들의 속출이 우리를 다시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했다.

세월호가 침몰된 4월의 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간절하다 못해 처절한 기도로 나부끼고 있는 노란 리본으로 얼룩진 팽목항에는 쉽게 봄이 올 것 같지 않다. 아니 섣불리 봄이 와서도 안 된다. 아직도 차디찬 컴컴한 바다 속에는 아홉의 영혼들이 지난 세상을 원망하며 수장되어 있다. 누가 시간이 약이라고 우기는가. 꽃 피고 새순 돋는다고 다 같은 봄이 아니다. 망각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그들 희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며 염치다.

앞서 언급한 입춘방인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災從春雪消 福逐夏雲興). 즉 재난이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이 여름 구름처럼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김종렬 시인/ ‘물시불 주막’ 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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