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없는 일본, 독일을 배워라
‘싸가지’없는 일본, 독일을 배워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2.03 21: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독의 마지막 대통령(1984~1 989년)에 이어 통일 독일 첫 대통령(1989~1994년)을 지낸 폰 바이체커 전 대통령이 별세했다고 한다. 그는 1990년 당시 서독 총리 헬무트 콜과 함께 독일 통일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일각에서는 그를 그간 상징적 의미에 머물렀던 독일 대통령의 영향력을 크게 확장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나치 독일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던 ‘독일의 양심’, 즉 ‘도덕적 양심’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나치의 일반 병사였던 그는 과거사를 사죄하는 연설에서 “그 누구든 과거에 대해 눈 감는 사람은 현재에도 눈이 먼 것”이라며 독일인에게 나치 독일이라는 과거사를 정면으로 마주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또 “유죄든 아니든, 젊었든 연로했든 과거를 받아들어야 한다”며 “우리는 모두 과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또 이에 대한 책임도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체커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1980년대 독일 지식인들과 함께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명운동 에 나서며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지원했다. 2003년 2월에는 독일 정부를 대표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더 나아가 한국의 통일정책에 대해서도 다양한 조언을 했던 대표적인 친한파 독일 정치인이었다. 고 강원룡 목사는 자서전을 통해 “바이체커는 자신이나 자기 정당의 이해보다 민족의 이해를 먼저 생각한 정치가였다”며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특히 이런 정치가가 나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독일처럼 통렬한 참회를 통해 부끄러운 역사를 인정하고 한 발 더 나아가려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이를 부정하며 상대 피해국가에 두 번 상처를 주려는 나라도 있다. 일본이다. 근자에 들어와 이 두 나라는 너무나 극명하게 엇갈리는 모습을 또 한 번 보여 주었다.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이 자행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대인 백만여 명이 희생된 수용소 앞에서 통렬하게 사죄하고, 역사에 대한 항구적인 책임을 강조했다. “독일인들은 죄인입니다.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낍니다” 라고 했다. 지난 1970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 뒤 독일은 이렇게 역사에 대한 참회를 거듭해 오고 있다.

반면, 일본은 학자와 언론인, 정치인 8천700여명이 모여 위안부 강제동원은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것도 모자라 강제 동원을 인정한 자국의 아사히 신문에 대해 일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까지 제기했다. 소송 대표를 맡은 와타나베 조치대 교수는 심지어 일본 국민에게 부끄러운 생각을 안겨준 아사히신문에 분노를 느낀다고까지 말했다.용서를 바라는 자의 참모습을 보여준 독일과 최소한의 양심조차 외면한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은 씁쓸할 수밖에 없다. 아직도 일본 정부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실 왜곡과 은폐로 일관하며 일말의 반성이나 책임감마저 느끼지 않고 있다. 게다가 걸핏하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억지를 부려 양국 국민의 정서를 갈등과 분노로 가중시키고 있다.

도덕적 양심은 자기 성찰에서부터 시작된다. 제아무리 위장과 포장을 하고 수단으로 가려도 숨길 수 없는 것이 양심이다. 그래서 양심을 저버리는 것은 속된 말로 ‘싸가지’이다.

누군가 “싸가지는 어쩌다 마시는 식혜라기보다 한 번 마시면 계속 마셔야 하는 커피와 같다”고 했다. 중독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특별한 사안에 대해 싸가지 없게 굴다가 다른 경우에 싸가지가 있게 되는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싸가지의 있고 없음이 태도의 형식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의식과 신념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용기와 파렴치의 경계마저 무너뜨려 파렴치하면서도 용감하고 의로운 행동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싸가지다”고 했다. 지금 일본이 그렇다.

김종렬 시인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