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그러한 점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군영에 불순한 뜻을 가진 군장들의 동태를 특별히 감찰하도록 하명했다. 진수라니 국왕이 각 군영을 돌아보는 것은 그와 무관하지가 않았다.
낙동강 수제에서 가야산을 넘어서까지 다라국의 총 15개 산성과 10개소의 군영을 일일이 찾아 나섰다. 자신이 직접 하나 하나를 눈으로 보고 확인하지 않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라(대가야, 고령)국의 최후의 날 군영처럼 병졸들이 채워지지 않아서 성벽만 서 있는 성은 없는가, 군영의 군기고마다 창과 화살은 잘 비장되어 있는가, 일일이 둘러보며 확인을 했다.
야철지마다 딸려 있는 무기 제작소에 가서는 더 많은 칼과 화살, 그리고 창과 방패를 만들 것을 하명하고 군영에 가서는 영(令)을 세우고 군병들의 사기를 북돋우라고 일렀다.
그것은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어쩌면 이것이 이 나라를 위해서 그가 하는 마지막 책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섬뜩하고 불길한 생각이 들 때마다 진수라니왕은 결코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의 주술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걸며 힘주어 칼자루를 잡았다.
대신들과 요직에 있는 군장들을 정전에 불러 신라의 침공에 대비하도록 하명한 것은 가라국이 신라군에 항복했다는 것을 보고받은 지 열흘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명일부터 정전에 들어오는 모든 신료들은 갑옷과 투구를 쓰라. 그리고 칼과 화살로 무장하고 전시의 모든 것을 갖추어라. 전쟁은 바로 성 앞에 와 있다. 그대들이 있는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른다. 그것은 오늘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다.”
진수라니왕은 대소 신료들에게 철제 갑옷과 투구를 내리고 칼 한 자루씩을 새로 내렸다.
“지금 이 순간 이후로 신라와의 화친을 말하거나 백성을 현혹하는 말로 나라의 힘을 분열시키는 자가 있을 시에는, 어느 때 어느 자리를 막론하고 그 자리에서 목을 벨 것이다.”
왕의 말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지금까지 화친을 주장해왔던 하한기 비조지마저 바닥에 엎드려 숨을 죽였다.
“병졸의 관리와 경계를 소홀히 하거나 군영을 이탈하는 군장은 참형에 처할 것이다.”
각 군영의 군장들에게도 갑옷과 말갑옷, 말투구, 그리고 칼 한 자루씩을 새로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자들을 불렀다. 전날 밤 두 왕자를 불러 밤늦도록 신라군의 침공 예상로를 이야기 했던 것도 같은 뜻에서였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