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빠르기
우리 삶의 빠르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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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tempo)는 클래식음악에서 음악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로, 악곡의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게 된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곡의 소제목으로도 쓰일 정도이다.

템포에는 많은 종류가 있으나 빠르기 순서에 따라 대표적인 것만으로 나열하면 ‘라르고(아주 느리게)-안단테(느리게)-모데라토(보통 빠르게)-알레그로(빠르게)-프레스토(매우 빠르게)’로 대표할 수 있다.

이중에서 모데라토는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보통 빠르게’로 번역되어 쓰이고 있으나, 사실은 영어 ‘moderate’와 같은 말로 ‘적당하게’라는 의미가 맞을 것이다. 모데라토의 빠르기는 사람의 생체리듬과 거의 같은 분당 100비트 정도라고 한다.

우리 사회를 음악 빠르기로 바꾸어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라르고’나 ‘안단테’ 정도의 느리고 변화가 무뎠던 사회가 경제개발사회로 진입하면서 ‘모데라토’ 없이 급속히 ‘알레그로’사회로 바뀌어 버렸다. 그 덕분에 먹고 살만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아주 잘 사는 나라로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우리의 그 변화무쌍한 속도감이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요즘은 한 발 더 나아가 변화와 개혁, 변혁이 우리 사회의 주요 키워드가 되고 있으며, 이런 추세에 발맞추지 못하면 뒤처지고 도태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변혁은 혁명을 의미한다. 혁명은 ‘이제까지 해왔던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갈아 치운다’는 의미이다. 지금 우리 삶의 모든 방식에서 ‘프레스토’가 강요되고 있다. ‘인간다움’은 ‘모데라토’로부터 얻어질 듯하나, 우리 사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는 대기업 총수의 혁신선언에 국민은 열광하였고, 그 결과로 그 기업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음 하였다. 우리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이 한국 대기업의 성공비결의 하나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뽑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량생산체제에서는 이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었으나, 지금과 같이 창의성이 요구되는 인간중심적인 환경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창의성은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잠복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에 열을 가하면 온도가 올라간다. 그러나 얼음과 물의 경계점에서는 열량을 가해도 온도가 오르지 않는다. 이 열을 잠열(潛熱)이라고 하는데, 문어적으로 풀이하자면 ‘옷 바꿔 입을 때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겪는 일이지만 컵에 양치물을 받을 때 급해서 수도꼭지를 최대한 틀어 놓으면 물이 콸콸 쏟아지기는 하나, 물이 컵에 다 차는 일은 절대로 없다. 오히려 시간을 들여 넘쳐흐른 양만큼 다시 보충해야만 한다.

이제는 우리 삶의 템포를 늦춰야 할 때다. 자동차도 방향을 바꿀 때에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천천히 걸어야만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가 자랑했던 ‘재빠름’이 ‘조급함’, ‘성급함’이 되어 거꾸로 우리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요즈음 ‘느리게 살기’ 운동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우리 몸과 마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속도를 내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것이다. 칼 오너리의 저서 ‘느린 것이 아름답다’나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상소의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나오는 느림의 유익함을 일컫는 말들을 나열해 보자. 치유, 이완, 휴식, 여유, 존중, 균형, 삶의 질, 인간관계, 만족감, 창의성-얼마나 아름다운 말들인가.

이제 우리 삶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참다운 행복을 위해 ‘모데라토’로 돌아가야 할 때다.

<박서운 울산과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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