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방랑객
입시 방랑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0.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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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 이른바 수능이 코앞이다. 하루, 단 한번의 시험으로 십여년 학습의 결과가 숫자로 판가름 나는 날이다. 성적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그에 따라 지원하는 대학이 달라지고 어쩌면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만나는 갈림길의 좌표가 될지도 모를 결과표를 받아 쥐는 날. 수십만의 수험생은 수험생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예민해지고 신경이 곤두서는 시기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만화를 즐겨 읽던 아이의 꿈은 꽤 어릴 때부터 정해졌다. 아이는 만화 관련 고등학교에 진학해 계속해서 제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이는 만화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비롯한 실용미술에 관심이 생겼고 그 방면의 대학으로 진학을 원했다.

수시와 정시를 막론하고 디자인을 비롯한 미술 대학 입시의 첫 관문은 실기시험이다. 입시 비리가 터지고 입시미술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천편일률적인 그림솜씨가 더 이상 당락을 가늠하기 힘들어지자 입시미술의 고정된 틀을 깬 전형이 생기고 실기전형을 폐지하는 일부 대학이 생기기도 했지만 여전히 미술대학의 입시는 실기시험이 주를 이룬다.

실기시험장소를 확보하고 채점하는 과정이 길어서일까, 미술대학의 전형료는 다른 일반 전형료보다 훨씬 비싸다. 또한 전형을 통과하지 못하는 수험생에게 전형료를 되돌려주는 경우도 거의 없다.

실기 시험을 치르는 일은 대학뿐만 아니라 수험생들에게도 어렵고 힘겨운 과정이다. 실기시험의 대부분이 해당 학교에서 오전 시간 위주로 이뤄지다보니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이른바 ‘입시여행’을 한다. 미술도구를 잔뜩 챙겨 넣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아이와 나는 본의 아니게 입시 여행을 몇차례 했다. 들쑥날쑥한 실기시험 날짜에 맞춰 학교 근처에 사는 친인척의 집으로 아이를 혼자 보내기도 했고 새벽에 기차를 타고 오가기도 하고 1박 2일의 일정을 잡기도 했다.

얼마 전 어느 대학이 대형 전시장을 빌려 실기시험을 치렀다. 행사를 하듯 기획한 대학의 처사가 뉴스거리가 되고 입시를 치른 아이의 말로는 천장의 조명 빛이 미술을 하기에는 부적합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차라리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이라는 장점 외에 복잡한 대학 내 건물을 찾아 우왕좌왕하는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몇몇의 학교를 오가는 동안의 시간은 공간으로 흩어져 돌아오지 않은 채 흘렀다. 수능 최저학력기준으로 최종합격을 정하는 몇몇 대학교에 지원한 터라 수능공부 시간이 아쉬웠지만 시험을 보느라 지친 아이를 차마 닦달하지는 못했다.

시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문득 ‘방랑’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일’이라는 방랑의 뜻을 찾아 읽으면서 나는 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록 이동의 목적이 분명했지만 고작 몇 시간의 시험을 위해 쓴 비용과 시간에 비해 쌓인 추억과 기억은 별로 없는 여정이었으니 이것이 방랑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런 와중에 수시 논술과 면접을 보는 수험생에게 유스호스텔을 제공한다고 나선 서울시의 결정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우리 지역에서도 고려해 볼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면 더 이상 대입에 신경을 쓰지 않는 학부모들이 주변에 많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허나 지금 우리가 잘 만든 제도와 정책은 누군가에게 이롭게 쓰일 것이다.

더 이상 입시 방랑객이 되어 떠도는 이들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오후, 여전히 평등한 가을 햇살이 온 세상을 비친다.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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