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엔 가라에서 돌아와서는 공산성 옆에 토막을 짓고 토적(土笛)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전설의 흙피리를 만든다며 지금까지의 세월을 보내지 않았던가. 나는 그가 만든 토적을 한 번도 본적은 없다. 하지만 들은 바로는 그가 가야산 기슭에서 가져온 흙으로 새로 피리를 빚으면 그 피리를 가지고 홀로 강가에 나가 불어보곤 한다고 했다.”
“어이해서 궁으로 다시 돌아오라 하지 않으셨사옵니까?”
이수위(二首位)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스스로 왕자의 자리를 포기하고 떠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는 이미 토적에 미친 자가 아니던가. 그런 그를 어떻게 다시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부왕도 나도 그를 다시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 가라의 태자 월광이 속세를 떠나 출가했을 때도 그를 찾아가서 함께 산문에서 몇 년을 보내기도 하였으니 어찌 그를 다시 왕자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할 수 있었겠느냐?”
“이제 다라(합천가야)를 떠났으니 잊어야 하옵니까?”
“잊는 것만이 아니라 버려라. 그는 더 이상 과인의 아우도, 이 나라의 백성도 아니다. 이 나라를 버리고 떠난 자를 어찌 나의 아우라 할 수 있겠으며 이 나라 백성이었다 말 할 수 있겠는가. 그를 낳아주고 그를 먹여주고 지켜준 이 나라를 버렸는데 어찌 이 나라가 그를 다시 용서할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사리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필부필부라도 용서 할 수 없는 일인데, 이 나라의 왕자로 태어난 자가 나라를 버렸으니 어찌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진수라니왕의 눈에서 실망과 분노의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이 변해 돌아올 수도 있지 않겠사옵니까?”
“한번 나라를 버린 자는 또 다시 나라를 버리는 법이다. 짐승은 배가 부르면 순해지지만 인간은 배가 부르면 배신을 꿈꾼다. 짐승은 은혜를 은혜로 갚지만 인간은 은혜를 악으로 갚는다. 그가 배가 불렀던 모양이다.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서 초개처럼 목숨을 바쳤건만 궁성의 따뜻한 방안에서, 백성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준 이 나라의 울안에서 그놈이 배가 불렀던 모양이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이수위는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용서해 주지 마라. 만약에 마음이 변하여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용서해 주지 마라. 이 나라에 다시 발을 밟는 즉시 죽여라. 적의 나라를 밟은 그 더러운 발로 이 땅을 더럽히기 전에 죽여라. 죽여서 그 목을 베어 나뭇가지에 묶어 두고 만백성에게 보여 주어라. 나라를 버린 자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 주어라. 그리하여 어느 누구도 다시는 이 나라를 배반하는 일이 없게 하라.”
“하지만 전하, 왕제를 어떻게 죽일 수 있겠사옵니까?”
이수위의 목소리가 떨렸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