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예찬
가을 예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0.19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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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길을 걸으면 기분이 참 좋다.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 잎이 오색찬란한 빛으로 물들어간다. 마름모꼴 담장을 따라 기어이 뻗어 오른 담쟁이넝쿨도 형형색색으로 색이 곱다. 잘 어우러진 오방색 보와 같다. 아파트 간극의 사이길 엔 뽀얀 가루를 뒤집어 쓴 자작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 길을 따라 걷노라면 땀에 저린 몸을 막 씻고 나온 기분이다. 햇살에 힘을 얻어 새빨간 색으로 물든 화살나무 잎이 나를 반기며 뽐내고 있다. 옆으로 꽃 댕강 나무의 하얀 꽃잎이 하늘거리며 햇살에 향기를 뿜어낸다. 보푸라기 이는 바람에도 살랑거리는 억새 잎에 다가가 손을 뻗치니 투박한 손등을 간지럽힌다. 세속에 짓눌린 무쇠 같은 마음도 솔가지 불씨에 달아오른 가마솥처럼 설레임이 석양처럼 타 오른다.

빌딩사이로, 새벽 안개사이로 뭉근하게 비친 햇살이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아기의 모습처럼 포근하다. 겨우내 숨죽이다 움트는 새 싹의 태동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래서 파란 하늘아래 햇살 따가운 가을은 정말 예쁘다.

겨우내 움츠렸다 기지개를 켜며 태동의 기운을 받는 봄에 이는 아지랑이가 제 아무리 아름답다지만 순간에 사라지고 마는 슬픔의 공허함은 세상사를 거스를 수 없음을 말한다. 뭇 생명을 깨어나게 하기에 설레며 기다리는 봄이라지만 황금 들녘의 튼튼한 알곡으로 물든 가을의 합주단에 비할 소냐. 지리 한 장마가 몸과 마음을 눅눅하게 하는 여름철 뙤약볕이 짓눌린 삶을 잘 건조해 준다한들 낭랑한 소녀처럼 수줍은 듯 아름다운 자태를 뿜어내며 화사한 단풍잎 나는 가을에 비할까. 하얀 천국으로 꽁꽁 얼어붙은 빙설의 계절 넉넉함을 평온으로 끌어준다 한들, 전신을 끊어지게 하는 외로이 선 나목의 빼어남이라 한들, 햇살 따사로운 은빛 물결이는 가을 산에 비할까.

가을은 색과 그림의 조화다. 가을은 색으로 치면 음양오행의 조화를 이룬 오방색이요, 그림으로 치면 수묵 담채다.

가을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가려는 느낌을 주는 오방색이 갖는 온갖 것들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지 않던가. 먹색을 기본으로 하고 여러 가지 채색을 보조적으로 써서 그린 수묵 담채처럼, 가을은 신이 준 자연색에 기후조건의 조화로움으로 빼어남을 선보이고 있어 수묵 담채이지 않으랴.

소슬바람에 못이겨 사부작이 떨어지는 여린 가을나무의 낙엽에 아린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은 이가 어디 있었으랴마는. 차분히 가라앉혀야 하는 정서적 기운이 감도는 것 또한 가을이 주는 맛이 아니던가.

한여름 내내 맹렬하게 퍼붓던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귀뚜라미의 외질로 들려오는 소리가 뒤이어 가냘프게 들려오는 것도 가을의 문턱에서 만끽하는 차분함이다. 가을은 정서적 안정감과 차분함으로도 다가온다.

소리조차 외길로 모아지는 계절. 그윽이 마음의 안정감을 가져오게 하는 가을은 소리에서도 빛깔에서도 예쁘다. 우리네 곁으로 살며시 다가오는 가을은 아득한 그리움을 묻어나게 한다. 가을엔 또 옛 일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마력이 숨어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달리 가을을 사랑하고, 가을을 아끼며, 가을을 가슴에 품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른다.

<이정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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