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라국(함안가야)한기의 말뜻을 어떻게 내가 모르겠소. 아라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느끼리라고 과인도 생각하고 있소이다. 다만 왜나 신라와 관계가 다소 안정적으로 회복되면 한시도 지체 없이 아라국과 여러 나라에 자율적인 체제를 보장하도록 하겠소이다.”
성왕은 역시 사람을 대하는 데 노련했다. 그의 말은 상국 국왕의 권위나 강압보다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졌다.
“전하, 가야 제국에 자율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가야를 부용화하려는 생각을 버리시어야 합니다. 전하께서 가야 제국을 부용화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신라 또한 가야 제국을 속국화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그런 생각을 버리셔야 신라도 야욕을 버릴 것입니다.”
다라국(합천가야) 진수라니왕이 성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가야의 여러 나라를 부용화하려는 생각을 가지지도 않았고 또 가지고 있지도 않소이다. 다만 신라가 가야의 여러 나라를 병탄하려는 것에서 구해 주려는 생각뿐이오.”
성왕은 여유롭게 진수라니의 말을 받았다.
“전하께서 가야 여러 나라를 신라의 병탄화의 야욕에서 구하시려면 신라 세력의 팽창을 막을 수 있는 실제적인 지원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떤 지원도 무용할 것입니다.”
“다라국왕의 말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 생각되오이다. 과인은 가야 연맹을 신라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해 두었소이다.”
“전하,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진수라니는 도발적으로 들릴 정도로 직설적이었다.
“신라와 안라의 경계지역인 낙동강 수제의 요충지에 여섯 개의 성을 새로 쌓도록 하겠소.”
“여섯 개의 성이라고 했습니까?”
성왕의 말에 졸마국(함양가야)의 한기가 제일 먼저 반색을 했다. 그리고 사이기국(의령)과 산반해국(합천 초계)의 한기들이 반색을 했다. 그러나 가라의 한기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성에는 가야 연맹의 병사들의 지원 없이 왜국 병사 3천과 우리 남부여군을 주둔시키도록 하겠소. 그리고 병사들의 양식과 의복과 같은 비용도 우리 남부여가 전적으로 부담하도록 하겠소이다. 그리하여 탁순국(창원가야)도 도로 찾아 가야 연맹에 편입되도록 하겠소.”
성왕이 두 번째 제안을 하고나서 먼저 아라의 한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가라의 한기 쪽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전하, 지금 가야의 여러 나라가 원하고 있는 것은 외국 병력의 주둔 없는 도움이옵니다. 외부 병력의 주둔은 가야 제국을 돕는 것이 아니라 분열시키는 것이며 스스로의 방어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명약관화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자칫 신라에게 군사적 행동을 서두르도록 유발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디 통촉하시어 남부여의 대 군왕으로서 전하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진수라니의 말에 성왕은 듣고만 있을 뿐 답을 하지 않았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