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에 소원을 빌며
보름달에 소원을 빌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1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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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지났다. 이번에는 길도 막히지 않고 날씨도 괜찮았다. 보름달처럼 환한 들녘을 가로지르며 달려간 고향은 넉넉했지만 담 너머 고개 내밀며 기다려주시던 어머님의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대문간 입구에 키 큰 해바라기는 기다리다 지쳤는지 고개 숙이고 촘촘히 박힌 씨앗은 타다 남은 재같이 검기만 했다. 기다리다 지쳐 아예 숯 검댕이가 된 어머님 속을 보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산 쪽을 바라보니 저수지 둑에서 세월을 낚고 있는 강태공 몇 몇이 보였다. 직장을 잃은 탓인지, 고향이래야 찾아갈 곳이 없는 탓인지 낚싯대로 모인 시선이 측은지심이다. 여름내 북적대는 벚나무아래 주인 없는 간이의자는 추석맞이 가고 없는 단골 낚시꾼들을 목 놓아 기다린다.

예년보다 추석이 일찍 찾아온 탓에 고추는 아직 반 밖에 물들지 않았고 콩 줄기는 풋풋한 초록잎사귀에 둘러져 아직 푸성귀로 남아 있다. 쇠똥거름 탓인지 키가 장대만한 참깨는 매미 집처럼 여러 층의 알갱이를 달고 있다. 깻단을 쪄 수확하려면 꽤나 힘들것 같다.

앞 집 어르신은 일찌감치 깻단을 쪄 어깨를 맞잡은 듯 세워두었다. 영근 깨알을 보니 대단한 풍작이다. 아무리 풍작이어도 올해는 어머님이 요양병원에 계시니 참깨 한 되 얻어가는 쏠쏠한 재미도 느끼지 못하겠다. 옷 가방에 몰래 쑤셔 넣어주신 참깨를 볶을 때마다 어머님의 정이 보태져 고소한 맛이 아파트를 넘쳐났는데 이제 그 맛을 느낄 수 없으니 쓸쓸하다. 올해는 형님이 짜 주시는 작은 소주병에 담긴 참기름 병이 외로울 것 같다.

뿔뿔이 흩어져 사는 식구들이 모두 모이면 왁자하게 동네가 떠들썩하다. 이것이 사람 사는 맛이다 싶다. 조상의 은덕에 감사할 일이다. 아버님의 산소를 찾아 미리 해 둔 성묘에 잘못된 게 없나 살펴본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생전의 아버님의 발자취를 떠올린다. 지금은 길을 넓혀 산소 입구까지 자동차가 들어간다. 집에서 고작 5분 거리다. 예전에는 아주버님 혼자서 성묘를 했다. 조카들이 한 둘 가정을 이루니 식구들이 늘어나 과수원 가장자리에 있는 아버님의 산소 주변이 왁자하다. ‘돈은 있을 때 아끼고, 형제지간에 다복하게 지내는 게 큰 재산이라’던 아버님의 평소 말씀이 귓전을 멤 돈다. 오늘만큼은 아버님도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시면서 흡족해 하실 것 같다. 생전에 묘 터의 정중앙에 쪼그려 앉아 앞에 보이는 정경을 가리키며 ‘내 죽거든 저수지 뒤로 솟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묻어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버님 소원대로 산소를 그 자리에 썼다. 어머님은 수년을 잔디사이로 뻗어 나오는 네잎 크로버와 비단풀을 아버님 보살피듯 뽑고 다듬었다. 추석이면 흩어져 사는 자식들이 말끔한 산소주변에 둘러앉아 옛날에 먹지 못한 귀한 음식을 나눠먹곤 했는데, 지난해부터는 어머님의 손길이 닿을 수가 없다. 비단풀도 자라고, 네잎 크로버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제 어머님은 당신 몸 하나 단도리도 남에게 의지하여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니 옛날의 그 그림자만, 그 기억만 산소 주변을 멤돌 뿐이다.

추석날 고향동네를 고루 밝혀주는 보름달을 보았다. 이렇게 가족들이 다 모여 보름달에 소원을 빌고 있는데 지천에 두고 함께하지 못한 어머님을 떠올렸다. 요양병원에서 기약 없는 그날만을 기다리는 어머님의 모습이 보름달에 한 가득이다.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돌아오지 못하는 어머님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이정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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