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그날 저녁 뉴스에 울산은 6년 전보다 초등학교 학생수가 42%나 줄었고, 작년에는 인구 1천 명당 신생아의 수가 8.6명에 불과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노란 줄을 쳐놓은 그 놀이터가 다시 떠올랐다. 언제부턴가 아파트 단지 안의 놀이터는 쓸모없는 공간이 돼버려 주차공간을 만들자는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른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놀이터도 아이들이 사라진지 오래전이다. 햇빛을 보고 흙을 밟으면서 자라야할 아이들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 하긴 목욕탕이나 길거리에서 임산부를 본 적이 손에 꼽는다. 버스나 지하철의 임산부용 좌석에 임산부가 앉을 걸 본적이 없으니. 애기울음소리를 들었던 적은….
이쯤 되고 보니 아파트 상가의 태권도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기합소리가 내 귀에 천상의 화음처럼 들리는 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엘리베이터에서 가끔씩 마주치는 동네 아이들마저 천사로 보일 때가 더러 있다.
친척들 중 결혼안한 조카들이 제법 있다. 요즘 삼십대는 ‘꽃띠’라며 싱글을 즐기고 마흔을 넘긴 총각 조카도 둘이나 있다. 얼마 전, 서른을 훌쩍 넘긴 조카가 결혼을 했다. 나는 친정조카에게 나이가 있으니 빨리 아이를 가지라고 채근했다. 혼전임신을 혼수목록 1호로 여기는 세대가 되었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결혼도 필수가 아니고 아이를 낳는 것도 선택사항이란다. 청춘남녀들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도 산수 셈하듯 따지고 드는 세상이다.
불과 30여 년 전만해도 나라에서 가족계획 정책을 펼쳤다. 보건소 여직원들이 가가호호 방문을 해서 단산을 권했다는 사실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의 섣부른 정책으로 인해 이제는 초저출산 국가라는 달갑지 않은 ‘명성’을 갖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30년 전과 반대로 국가가 나서서 가임기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아달라며 집집마다 다녀야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놀이터뿐만 아니라 학교에도 아이들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이미 학생보다 학교가 많은 시대가 돼버렸다. 중국이나 동남아 유학생들이 아니면 대학은 유지가 어렵다는 말도 있다. 군대도 군인들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전과자며 군 부적응자까지 현역으로 차출돼서 오늘날 군대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설이 나돈다. 대가족속에서 유년기를 보낸 기성세대들에겐 유언비어 같은, 믿기 어려운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정부의 말만 믿고 아이를 적게 낳은 결과가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국민명절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명절이 되면 온 일가친척들이 모여서 지지고 볶고 하던 그때가 달나라에서 옥토끼 방아 찧던 옛 이야기가 돼버렸다. 올해는 배불뚝이 조카의 모습을 볼 수 있을는지. 한집 건너 애기들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런 세상을 바라는 건 나만의 희망사항에 불과한 건가.
<박종임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