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회-5. 부왕의 죽음(9)
57회-5. 부왕의 죽음(9)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2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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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결국 다라국의 태자 진패주와 혼인하여 다라로 왔다. 그리고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오래 가지 못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왕비를 따라 다라국에 와 있던 그녀의 동생인 졸마국의 왕자가 야로의 야철장에 몰래 침입하여 제련기술을 빼내어가려다가 발각 되었다.

진패주는 고통스러웠다. 철을 유출하거나 제련 기술을 빼내가는 일은 중죄인으로 다스리는 것이 다라국의 법이었기 때문이다. 철과 관련된 죄는 살인죄보다 더 엄하게 처벌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다라국의 율령이었다. 왕은 고심했다. 아직 젊은 왕으로서 나라의 법을 어기며 자신의 비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비를 버리고 나라의 법을 지킬 것인가를 생각하며 여러 날을 고통스럽게 보냈다.

왕비의 동생은 처형되었다. 그리고 왕비도 동생과 관련된 죄로 무태산 석굴에 유폐되었다가 본국으로 추방되었다.

“철과 관련된 죄를 지은 자는 모두 참형에 처하라.”

그것은 그가 선왕으로부터 왕위와 함께 물려받은 불문율이었다. 왕은 선왕으로부터 부여받은 그 율령을 스스로 어길 수가 없었다.

“저는 죄를 지은 몸이 되어 이 나라를 떠나가지만 부디 이 아이만은 태자로 삼아서 장차 이 나라의 걸출한 왕이 되게 하여 주소서.”

왕비는 울지 않았다고 한다. 졸마국의 졸야성 성주의 딸로, 여전사였던 그녀는 두 아들을 두고 가면서도 울지 않았다고 한다. 진패주왕은 나라의 법에 따라 다시 왕비를 들였고 거기에서 다시 다섯 명의 왕자와 세 명의 공주를 얻었지만 떠나가면서 했던 폐왕비의 말을 기억했기 때문인지, 진수라니를 태자로 삼아 한기의 자리에 앉혔다.

현비가 나은 왕자를 등에 업고 진수라니를 태자의 자리에서 몰아내려고 하한기 필모구라가 왕에게 간언했지만 왕은 진수라니를 믿고 마침내 한기의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자주 자리에 누우시다가 이승과 하직하셨다.

진패주왕은 야철지의 시설을 늘리고 더 많은 제철 기술자를 양성하여 철의 생산량을 2배 이상으로 증가시켰다. 변경 요충지의 산성을 보강하고 병력을 증강 배치하였다. 삭망이면 아침에 말을 타고 궁성을 출발하여 변경의 산성을 돌아보고 병력 상태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강에서 물을 끌어다 농사짓기를 가르쳐서 가을이 되면 나라의 온 들판에 오곡이 가득하게 하였다.

남부여(백제)가 남진하여 가야의 연맹을 침략할 때 멀리 상기문과 하기문국에 병력을 보내어 적을 막아주기도 하였다.

‘삶을 넘어서는 죽음이 어디 있으며 죽음을 넘어서는 삶은 또 어디 있겠는가, 죽음의 그 절대적 독존도 결국 삶을 초월하지는 못할 것이다…….’

진수라니 한기는 숨을 거둔 부왕 옆에서 백 일째 밤을 맞았다. 이제 날이 밝으면 옥전의 선영에 부왕을 모셔야 한다. 석 달 열흘은 길다면 긴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니 진수라니에게는 오히려 부족한 시간이었다. 유택을 준비하고 거기에 부장할 물건들을 새로 만들고 하는 데는 석 달 열흘도 결코 긴 기간은 아니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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