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이 사는 나라
괴물들이 사는 나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1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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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 버스 정류장에서 휴가를 나온듯한 군인을 봤다. 군용 배낭을 메고, 머리에는 베레모, 끈을 단단히 조인 군화에 알록달록한 신형 군복을 단정히 차려 입은 그는 버스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동안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평온해 보이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도 드러나지 않은 비밀을 캐는 양 계속 그를 흘깃거렸다. 곧 그는 태화강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나도 집으로 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태풍 할롱의 영향으로 불기 시작한 비바람은 차창뿐 아니라 내 마음도 흔들어댔다.

잔인하다는 사월에 시작된 죽음의 행렬은 태풍이 몰아치는 오늘까지 끝나지 않고 계속이다. 꽃다운 수백명의 아이들을 수장시킨 일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제 나라를 지키던 군인까지 어이없는 폭력에 희생되다니 착잡함을 금할 길 없다. 누구의 사랑스러운 아들이자 자상한 형, 동생이며 착한 선배이자 후배인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집단폭력자로 변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도 언젠가 피해자였다니 더 놀라울 따름이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총기 난사를 한 임 병장이 되고, 가만히 있으면 죽음을 당한 윤 일병이 된다는 어느 아버지의 일갈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온다.

사람에 대해, 인간의 성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제일 무서운게 사람이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지만 요즘처럼 인간에 대해 회의적일 때가 없었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대물림된다는 말이 아직도 유효한 세상에 사는 우리가 한심스럽다. 일찌감치 폭력에 노출되는 아이들에게 어떤 인간의 가치를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겠고, 아들을 군대를 보내는 일이 두렵기조차 하다.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가를 가늠하는 잣대가 있다한들 요즘의 상황을 감당하겠는가. 잔인한 방법으로 인간을 해하는 뉴스가 넘쳐난다. 그 중에 윤 일병의 죽음을 부른 군대 내 가혹행위는 인간의 도를 한참 넘어선 느낌이다. 직접적으로 위해를 한 가해자든 모른 체 눈을 감은 방관자든 모두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우리 아이들은, 아니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의 마음을 거부한 괴물이 되었을까.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변해버린 곳은 군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일지도 모른다. 위치에 따라, 신분에 따라 누구든 괴물로 변하는 나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이 점점 어렵다. 한순간에 나도 괴물이 되어 폭력을 휘두르고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미 괴물이 되어버린 우리를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매일을 충실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아주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리라.

모리스 샌닥의 동화 중에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는 작품이 있다. 엄마에게 혼이 나고 방에 갇힌 맥스가 주인공이다. 세상 전체가 되어버린 소년의 방을 떠나 맥스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닿는다. 그곳에서 소년은 왕이 되어 군림한다. 눈알이 뒤룩뒤룩하고 이빨을 부드득 갈고 무서운 발톱을 세우는 괴물들도 그에겐 꼼짝하지 못한다. 괴물들의 나라를 뒤로하고 맥스를 돌아오게 하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로 끝나는 동화의 결말처럼 우리에게도 아직 남은 따뜻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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