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회-4. 모반과 추억(7)
43회-4. 모반과 추억(7)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7.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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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일지도 모른다. 그 놈이 여기서 도망쳐서 바다 건너 왜로 건너갔다고 하지 않았는가…….”

진수라니 한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찬찬히 생각해 보니 사건의 정황이 좀 더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쇠가 끓고 있는 고로에 죄인을 던져 넣는 것은 야로 야철지에서만 있어온 형벌이었다. 그것도 철에 관련된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참형이었다.

‘약탈자들이 고로장인을 고로에 던져 넣었다는 것은 이곳의 처벌법을 익히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 자는 분명 이 야철지와 관련이 깊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괴수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말을 할 때 그들의 신분이 노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나라의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쉬 그 신분이 노출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들은 다른 나라 말을 하는 사람들이란 말이 아니가?’

진수라니의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지난날 야철지에서 있었던 여러 일들이 다시 떠올랐다.

나라 간에 분쟁이 잦아지고 크고 작은 전쟁을 치루면서 각 나라에선 철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철을 구하느냐 못하느냐는 것은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화살촉과 투구, 칼, 창, 투구, 철갑옷, 말투구, 말갑옷, 말안장, 비늘 갑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철이 필요했다. 한번의 전쟁을 치르는 데 어마어마한 화살촉이 필요했다. 그래서 철의 수요는 더 급증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라마다 철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철의 제련방법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철 제련 기술은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었다. 그러다 보니 철을 제련하는 기술자인 고로장이나 광석을 채집하는 전문가를 납치해 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철을 약탈해 가는 일은 비사벌(창녕)이 신라 영토에 편입되어서 낙동강 수로가 막히면서부터 극성을 부리게 되었다. 낙동강을 통해 가라국(대가야)과 철 교역을 하던 나라들은 낙동강의 수로가 신라에 의해서 막히자, 아라국(함안가야)을 거쳐 다라국(합천가야)으로 와서 철을 교역하면서부터 철의 약탈도 극성을 부리게 되었다.

다라국의 여러 야철지는 주변에 광석의 산지가 여러 곳이 있었고 그 광석을 제련하는 데 필요한 땔감 나무가 풍부했기 때문에 철을 제련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더구나 남가라국(대가야)에서 이곳 황강변으로 이주해 와서 나라를 세울 때 철을 제련할 줄 아는 많은 기술자들이 함께 왔기 때문에 양질의 철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누대에 걸친 선왕들은 야철지의 관리를 최대의 국정 과제로 삼았다. 그래서 철광석의 채집과 제련, 그리고 교역에 이르기까지 엄격히 관리해 왔다.

주변의 연맹 국가에서 철을 교역해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멀리 왜국에서 철을 교역해 가기 위해 자주 왕래하였다. 왜국은 철의 확보에 모든 것을 다 걸다시피 하고 있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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