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
첫 경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7.2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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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자 도심의 거리는 분주했다. 퇴근시간에 맞춰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행렬속에서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당연히 좌석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오전부터 부산히 움직인 탓에 피곤이 한순간에 밀려왔다. 겨우 버스 손잡이 하나를 잡고서야 버스가 출발했다. 그때 내 앞에 앉아있던 한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내게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양보했다. 자리를 양보 받다니. 첫경험이었다. 꿋꿋하게 서 있었지만 지쳐보였나? 나는 순간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당황하여 괜찮다며 가벼운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도 그 청년은 정중히 미소 띤 얼굴로 앉기를 권했다. 얼떨결에 자리에 앉았다.

단순히 생각하면 양보 받은 자리에 그냥 창밖을 보며 앉아가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많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우선은 ‘내가 벌써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 받을 만한 나이가 되었나? 아니 외면적으로 그렇게 보였나?’ 싶기도 해 씁쓸하기도 하고 ‘이 청년은 연장자에 대한 예의범절을 제대로 배웠구나’ 싶어 흐뭇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정류장마다 내리고 마침내 그 청년도 뒤편 빈자리에 앉게 되었다. 조금 후 버스가 집근처 정류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 출입구 쪽으로 나가다가 나는 그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청년이 목례를 건넸다. 나도 “고맙게 잘 왔어요” 라고 말을 건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피곤에 절었던 몸과 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 했다. 자리를 양보 받았다는 것보다 이젠 사라져버린 것만 같았던 아름다운 젊은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청년은 군 복무중인 작은아이 나이또래정도로 보였다. 버스에 올라 옆에 서 있던 내가 자신의 어머니뻘 정도로 보였을 테고 당연히 부모뻘 되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강요하듯 해서 받는 대접은 그리 유쾌하지도 않은 뿐 아니라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양보를 받았다면 아무리 어린 사람에게라도 가벼운 고마움을 표하는 것도 연장자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사실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노인들이 몇 십분 서서 가기는 체력적으로 힘이 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노인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로지 휴대폰에 코를 박고 주위를 둘러보는 아량도 없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뵈면서 이젠 노년의 깊은 고독과 육신의 고단함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지만 우리가 지난 날 배웠던 어른공경이나 예절교육은 실종된 지 오래다. 사회곳곳에서 빈번히 패륜이 자행되는 것이 목격되는 이 시대인지라 연장자에 대한 당연한 예의범절이 귀감이 되고 작은 배려에도 행복해지는 것에 그저 실없는 헛웃음이 날 뿐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문자교육이 우선시되고 있는 요즘의 학교교육에서 인성이나 도덕교육은 이젠 찾을 수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나마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듣던 잔소리라고 여겼던 밥상머리교육도 가족 간의 삶이 다분화되고 바빠진 이유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기에 개인에 대한 자유와 풍요로운 물질이 가져다주는 만족의 끝에서도 왜 우리는 공허하고 두려운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면 우리 기성세대가 옛적에 부모로부터 학교로부터 배웠던 사람교육을 이젠 우리아이들에게 시켜야하지 않을까.

<이정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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