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논문 한 편을 접했다. 지난해 연말에 발간한 《울산학연구 제17집》에 실린 을 읽은 것이다. 울산예고 교사 김정호가 울산 출신 가수 고복수에 대해 80면(200자 원고지 320매 이상) 분량으로 깊이 있게 연구한 논문이었다. 먼저 대중가요의 형성과 갈래를 밝혔고, 그다음에 고복수의 삶과 음악활동을 세세하게 연구하였다. 또한 고복수가 대중음악계 끼친 영향과 문화적 의의를 짚어보고 있다.대중가요 형성에는 ‘이식론’과 ‘자생론’이 있다. 일본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이식론이고, 전통가요를 대중가요화하

“손이 시리면 따스히 만져주마/ 추운 날이면 두 볼을 감싸 주마/ 너무 힘들거든 내게 기대오렴/ 눈물 나거든 내 품에 안기렴/ 냇물아 흘러 흘러 강으로 가거라/ 맑은 물살 뒤척이며 강으로 가거라/ 힘을 내거라 강으로 가야지/ 힘을 내거라 바다로 가야지/ 흐린 물줄기 이따금 만나거든/ 피하지 말고 뒤엉켜 가거라/ 강물아 흘러 흘러 바다로 가거라/ 맑은 물살 뒤척이며 바다로 가거라”앞의 글은 라는 제목의 노랫말이다. 냇물은 강으로 가고, 강물은 바다로 가는 것은 정한 이치임에도 흘러가는 물줄기에 이렇듯 힘을 내라고 응원

한 해가 저물어가는 끝자락이다. 음양의 변곡점인 동지가 지났으니 양기는 이미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봄부터 숱한 변화가 일어났던 들판이 비움의 지혜를 발휘하고 있음을 스치는 바람은 알고 있다. 나무가 송두리째 벗어버린 것 같지만 엄동설한에도 내년 봄을 위한 겨울눈만큼은 꼭 지켜내는 것은 그들만이 갖고 있는 지혜이다. 끊임없는 자연의 순환체계 앞에서는 채우려고만 하는 사람들의 삿된 욕심이 부끄럽기조차 하다.‘섣달그믐’ 하면 떠오르는 기억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면서 잠을 자지 않으려고 버티던 일이다. 이는

가을이 시작될 무렵, 필자는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의 73주기 추모식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 마포구 양화진에 있는 묘지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이 그가 생전에 한 말을 소개했다. 1942년 3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서 행한 연설 내용이다. “한국의 자유는 천부적 권리이다. 만약 2차 대전 종료와 함께 조선이 독립을 얻지 못한다면 인류는 훨씬 더 큰 재앙을 만날 것이다. 한국을 완전히 독립시킬 자는 미국뿐이다.”헐버트가 미국 정부에게 조선 독립을 호소했다는 말이다. 23세이던 188

올해는 내 손으로 알곡들을 제법 거두었다. 아내의 손을 더 많이 거쳤으니 내 손으로 거뒀다고 하기는 좀 멋쩍긴 하다. 알곡이란 쭉정이가 섞이지 않은 곡식이다. 쌀이나 보리쌀은 알곡에서 겨를 벗겨내야만 먹을 수 있다. 조나 기장 같은 잡곡들을 심을 수는 있지만 새들로부터 지켜내기가 쉽지 않다. 강냉이를 좀 심곤 하지만 대개 간식용이니까 알곡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거둬들인 들깨나 참깨 알갱이는 참 귀하기는 하지만 곡식은 아니다.결국 내가 거둘 수 있는 알곡은 콩 종류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아내는 모종판에 콩을 하나씩 넣고 배양토

“천지를 주무르는 재주와 나라를 바로잡은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이는 이순신에 대한 최초의 평가로, 명나라 제독 진린이 선조에게 올린 글에 나온다. 이순신은 명 만력제로부터 ‘대명수군도독’을 제수받았는데, 이는 정1품으로 선조보다 높은 벼슬이었다. 명의 장수들은 상국이라는 이유로 행패가 극심하여 조선군의 골칫거리였는데, 이순신은 전공을 진린에게 돌리는 등 지혜를 발휘한 끝에 조명연합군을 결성하여 노량해전에서 왜군을 격퇴할 수 있었다.이순신은 1591년 3월에 특진으로 전라좌수사에 기용되었다. 임진왜란이 시작되기 13개월 전, 그는

영화 을 본 지 달포가 지났다. 개봉 두 달 반을 넘긴 늦깎이 관객이었지만 꼭 보고 싶었다. 김한민 감독은 1천760여만 관객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이후 8년이 지나서야 을 내놓았다. 은 칠천량해전의 처참한 패배로 조선 수군이 궤멸한 지 두 달 뒤인 1597년 9월 16일(음)에 거둔 기적 같은 해전을 재현했다.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이 겨우 수습한 13척의 함선으로 333척의 왜선을 격파하는 극적인 장면들이었다.1597년 7월에 시작된 정유재란은 전라도를 거쳐 한양으로 진입하는 것이

국립한글박물관은 2014년 10월 9일에 개관했다. 3년 전인 2019년에 개관 5주년 특별전으로 ‘한글의 큰 스승’을 설문조사로 뽑은 5인과 박물관이 선정한 7인 등 12인의 한글 관련 활동을 소개했다. 세종을 제외한 후보 33명 중 ‘한글’ 하면 떠오르는 사람을 3명씩 선택하도록 한 결과 ‘주시경, 윤동주, 허균, 방정환, 성삼문’이 올랐다. 박물관이 한글 발전에 기여한 주역으로 뽑은 인물은 ‘공병우, 박두성, 장계향, 정세권, 최세진, 최정호, 헐버트’였다.이 열두 분의 출품 자료는 모두 195점이었다. 인물에 초점을 맞춘 전

“북쪽 바다에 큰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그 길이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곤이 변신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의 등덜미는 그 길이가 몇천 리인지 알 수가 없다. 온몸에 한껏 힘을 주고 하늘을 나는데, 활짝 펼친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다. 이 새는 바다가 크게 움직일 때 남쪽 바다로 날아가려 한다. 남쪽의 깊고 검푸른 바다는 ‘하늘 연못’, 즉 천지(天池)이다.”장자가 말한 편의 유명한 첫 구절이다. 시작부터 은

유럽은 최근 ‘500년 만의 가뭄’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 7월 중 프랑스와 영국 강수량은 예년의 1/5 수준에 불과했다. 2021년에 홍수가 났던 영국 템스강이 마른다는 건 참 기이한 일이다. 독일과 벨기에 등지에 열흘간 폭우가 쏟아져서 2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작년과도 완전 딴판이다. 라인강의 수위가 현저히 낮아졌고, 프랑스의 루아르강, 이탈리아의 포강도 비슷한 상황이다. 특히 라인강은 수상 운송의 80%를 차지하는데 배 운항에 제동이 걸렸다.가뭄은 유럽 전역에 걸쳐 진행 중이다. 관광과 전력에 타격을 입고, 크루즈 산업

육사 이원록(1904~1944)은 퇴계의 14세손이다. 6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는데, 형제들이 모두 문재(文才)가 뛰어났다. 육사는 문중이 설립한 보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우다 도산공립보통학교로 바뀌면서 1회로 졸업했다. 15세에 ‘흉중 오천 권’으로 표현할 정도로 고전을 통달한 것이 후일 그의 문장을 탄탄하게 했다. 육사의 고향 원촌은 진성이씨 동성마을로, 청량산을 빠져나온 낙동강이 협곡을 지나 깎아지른 절벽에 부딪혀 크게 휘돌아나가는 상류 지역이다.육사는 16세에 영천 부호 안용락의 딸 일양과 결혼했다. 그 인연으로 영천의 민족

오랜만에 책 한 권을 정독했다. 두어 달 전에 육사문학관에 갔을 때 사온 《이육사문학과 저항정신》인데, 유일한 혈육인 이옥비(李沃非, 1941년생)의 친필 서명을 받은 책이다. 육사 이원록(陸史 李源祿, 1904-1944)의 탄신 110주년(순국 70주년) 기념으로 2014년에 나왔는데, 5년 동안 발표된 학술논문집이다. 육사의 시를 인용하고 분석하면서 저항 논리, 문사적 소명, 시적 형상, 예언자적 지성, 낙원 의식, 인간적 아픔 등을 심층적으로 연구한 내용들이다.민족저항 시인으로는 흔히들 네 분을 꼽는다. 이육사와 한용운은 행동

역사 속에는 수많은 인물이 존재한다. ‘상우고인(尙友故人)’, 즉 이미 검증된 옛사람을 벗으로 삼는 일은 큰 즐거움의 한 가지라 하겠다. 마음을 넓히고, 눈을 뜨고, 마음을 채우는 독서상우(讀書尙友) 또한 상우고인에 못지않다. 필자는 상우고인의 머리에 다산 정약용(1762-1836)을 놓는다. 18년이라는 장기 유배기간 동안 학문에 침잠하면서 실학을 바탕으로 하는 민본주의 사상을 집대성한 위대한 저술가요 사상가였다는 점이 우러를 만하기 때문이다.그의 혁신 의지는 경자유전(耕者有田)에서 나타난다. 백성의 수와 농지 결의 수를 파악하여

심완구 전 울산광역시장은 2년 전 오늘, 작고했다. 코로나로 어수선하던 2020년 6월 8일에 이승을 하직한 것이다. 지난 6월 4일(토)에 2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이웃 천곡마을에 있는 묘소는 양친 아래 편안해 보였고, 접근성도 좋았다. 고인을 울산시민장으로 예우했던 것처럼 그날의 추모식도 후임 박맹우 전 시장 외 여러분들과 함께 경건한 분위기였다. 행사는 묵념을 시작으로 약력 소개, 추모사, 유족 인사, 추모시 낭독, 헌화와 분향 순으로 진행되었다.“다시 유월입니다/ 당신이 가신 그 유월입니다/ 당신 없는 유월은 바람이 빠져나간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에게는 온갖 수식어가 붙는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월급의 90%를 기부하는 대통령, 결코 국민을 속이지 않는 대통령” 등이 그것이다. 무히카는 이런 기본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숱한 개혁 정책을 시도했던 사람이다. 그 결과 경제는 성장했고, 국민소득은 올랐으며, 빈곤층은 줄어드는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었다. 이런 조용한 혁명을 주도했던 그를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그가 교황을 방문했을 때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매스컴들은 ‘성자와 현자의 만남’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교황을

안동 독립운동사에서 늦게 알려진 귀한 분이 있다.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간 여성 독립운동가 김락(金洛, 1863-1929)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예안면 내앞마을 의성김씨 집성촌에서 자라 도산면 하계마을 진성이씨 집안으로 시집갔다.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두루 벼슬을 거쳤던 향산 이만도(1842∼1910)의 맏며느리이자 이중업(1863∼1921)의 아내가 된 것이다. 시가(媤家)는 퇴계 이황의 후손 집안으로 내리 3대로 문과에 급제한 명문가였다.김락은 시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집안 살림을 도맡게 되었다. 시아버지 향산은 처참한 을미사변이

‘헤럴드 아코스타’는 공장에 출근했으나 작업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신분증 기한이 만료되어 집으로 돌아가다가 너무 멀고 더워서 승차요청을 시도했다. 지나가던 관용차가 그를 태워주었는데, 운전석에는 ‘호세 무히카’ 대통령이, 조수석에는 부인인 ‘루시아 토플란스키’ 상원의원이 타고 있었다. ‘아코스타’는 그때 상황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대통령이 나를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대통령 부부는 매우 친절했다. 이 짧은 여행은 더없이 소중하고 유쾌했다.”소설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다. 한반도와 남반구의 대척점 위치에

북구에서 가장 높은 파군산은 신라 초기에 명명되었다. 1749년에 발간한 최초의 울산읍지인 《학성지》에 파군산이 나오는데, 신라 제10대 내해 이사금 17년(212)의 일이다. 이 해에 골포국(창원 칠포) 사람들이 갈화성(또는 불굴, 지금의 울산 굴화)을 공격하였다. 이에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주둔하면서 갈화성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도적들을 격파하고 회군하였다. 이런 유래로 ‘파군산(罷軍山)’이라는 이름이 지어졌고, 마을 이름도 ‘대안동’이 되었다.이 전란에서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물계자(勿稽子) 장수이다. 이보다 앞

울산 북구의 주된 산줄기는 삼태지맥이다. 이 삼태지맥은 호미기맥의 일부로, 토함산 남쪽 6km 지점의 456봉에서 남하하여 조양산(562m)과 삼태봉(629m), 기박산성을 거쳐 울산으로 내려온다. 울산에서는 526봉을 지나 동대산(447m), 무룡산(451m)을 거쳐 정자고개로 내려앉는다. 다시 마골산, 염포산, 망계산으로 이어지다가 화암추등대 근처에서 맥을 다한다. 길이 41km의 산줄기인데, 울산 땅 중에서는 ‘526봉’이 가장 높다.농소 사람들은 보통 동쪽 산줄기 전체를 ‘동대산’으로 부른다. 특별히 어느 한 지점이 우뚝하지

KBS 신년특집 4부작 가 방송되었다. 지난 1월, 매주 목요일 저녁에 선보인 이 방송은 4인의 전문가가 4주에 걸쳐 차례대로 진행했다. 제1강 는 이정동이 ‘기술패권 경쟁’을, 제2강 는 김세직이 ‘제로성장 극복을 위한 준비’를, 제3강 는 홍종호가 ‘에너지 대전환’을, 제4강 는 정범구가 ‘위기를 맞은 다자주의 극복’을 강의했다.제1강 는 ‘기술주권’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