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같이 가요 / 김승여-할머니 따라 저도게도 잡고조개도 캐서엄마 아빠 용돈 줄 거예요.모내기하라며 마지막 봄비가 내리고 유월이 되었습니다. 앵두가 빨갛게 익고 매실도 따내며 찌는 듯한 유월 더위에 벌써 시원한 바다를 생각하며 김승여 시인의 디카시 ‘할머니 같이 가요’를 감상합니다.부산에 다대포해수욕장과 풍경이 비슷한 저곳은 태안반도라고 하는데 앞서가는 할머니를 따라가는 아이의 당찬 발걸음이 느껴지며 시원한 풍경을 선사하는 사진입니다.태안반도에 기름이 유출되어 해양이 심각했을 때 자원봉사자로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분이 모

앞에 벽이 보일 때 / 이시향담쟁이 넝쿨이 걸어간길을 보면넘을 수 없는 벽을넘어서는 지도가 보인다.우리는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높은 벽을 마주할 때가 있다. 보통의 많은 사람들은 벽 앞에서 좌절하고, 벽을 만든 사람에 대한 분노로 삶을 놓아버리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어떠한 난관에 부딪칠 때 한 걸을 나아가기보다 스스로 절망하고 포기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위대한 개척자나 모험을 좋아하는 도전적인 모험가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두려움 앞에 자신을 던진다.니체는 ‘이것이 삶이던가, 그

숯덩이 / 박동환불길이 잠잠하게 가라앉는다붉은 빛은 어둠에 묻히는데꼭꼭 숨겨둔 열정이 타다타닥조용히 하늘을 태우고 있다박동환 시인의 디카시 ‘숯덩이’를 감상합니다. 시인은 시작부터 불길이 잠잠하게 가라앉는다고 합니다. 이제는 가장 뜨거웠던 시간을 끝내고 편안한 휴식이 찾아오나 봅니다. 누구나 가슴에 불덩이 한 덩이쯤 끌어안고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불덩이 하나쯤 있어야 인생살이 살맛이 나지 않겠습니까?불덩이가 크든 작든 그 불꽃을 피웠다 껐다 해야 인생살이에 맛을 더하며 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슴에 불덩이도 나이

난생처음 여자가 되던 날나는 울었고엄마는 얼굴이 붉어졌다.불혹에서 멀어질수록그날이 그립다.아카시아꽃 향기 날리는 동그란 오월 떨어지는 빨간 단풍잎 하나를 절묘하게 받아낸 나무가 여자가 된 박해경 시인의 디카시 ‘그날’을 감상합니다.이 작품은 지난 5월 8일까지 명지 갤러리에서 18인 디카시 생각 전시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목을 끌었지요. 어디에 걸리든지 궁금증을 유발하며 눈길이 가게 하는 중심이 될만한 작품이라 생각 됩니다.물론 사진과 시의 궁합이 아주 잘 맞아서 남자가 읽어도 첫 생리가 부끄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여자는 그날을

-산골 도서관 / 김무교-겨울 산속에는바람이 엮어 놓은길고 짧은물의 경전들이꽂혀 있다.도서관에 가면 형형색색의 도서들이 책장에 일렬로 줄지어 서 있다. 옛 성현들의 말씀이, 아름다운 노래가,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많이 벌고 싶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돈에 관한 얘기가, 과학이 만든 문명의 이야기들이 칸칸이 꽂혀 있다.작가는 아마도 겨울 한적한 시골 길을 걸으며 물이 흘러 가지런하게 고드름이 생성된 모습을 보고 도서관에 책들이 꽂혀 있는 모습을 연상했을 것이다.생명의 근원인 물이라는 물질은 포유류에게 모유처럼 가장 기본적으로 섭취해

내일은 봄 / 성환희봄을보려고꽃이 왔어요언 땅을 뚫고죽은 나뭇가지 위를 걸어서 성환희 시인의 디카시 《내일은 봄》을 감상합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를 들여다보는 느낌입니다. 꽃샘바람에 여린 꽃잎 다칠까 봐 걱정되면서도 겨울동안 보지 못한 귀한 꽃이기에 올려다보는 재미가 마냥 좋습니다.참 신기한 일입니다. 젊었을 때는 꽃이 꽃이구나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꽃이 그냥 꽃이 아니라 꽃피는 것도 나이 먹는 걸로 느껴져 나도 모르게 한참을 들여다보고 코끝에 갖다 대며 향기까지 느낍니다. 그러다 시들어가는 내게 비교하고 내 나이를 가늠하기

-순비기꽃 / 안창남- 물질 나간 좀녀 어멍호이호이 숨비소리 내지를 때마다피어나는 꽃※좀녀 어멍:해녀 어머니순비기꽃의 꽃말은 그리움이지요. 고향이 제주도인 저는 “순비기꽃”하면 지금도 꽃말보다 더 그리운 무엇이 울컥 목젖을 타고 올라옵니다. 제주도 사투리로는 “숨비기고장” 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4월 24일부터 궁거랑 벚꽃 길에 있는 명지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는 고향 선배 안창남 선생님의 순비기꽃을 감상합니다.이 꽃은 바닷가에 사는 사람에게는 필수품에 가까웠는데 모래밭이나 자갈밭에서 간혹 짠 바닷물을 뒤집어쓰면서도 왕성하게 잘 자

-알츠하이머 / 장미화-가을 넘어서는 나이가되어보니푸르르던 기억도노랗게 물들었던 기억도모두 흐릿해진다.작가는 은행나무의 단풍이 노랗게 물든 모습을 빛에 굴절되고 약간 흔들리는 듯한 몽환적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은행잎이 빛에 반사되고 굴절된 흐릿한 피사체를 보고 알츠하이머를 연상하게 된다. 작가의 나이도 아마 어림짐작으로 가을을 넘어서는 나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중년을 지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봄이면 식물이 아주 연한 연두색 빛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톡 터질 것 같은 연약하고 싱그러운 색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거기에 소담

-봄밤의 연서 / 이미희-누구를 향한 편지일까꽃잎마다 펼쳐내는 글씨체,들켜버린 물무늬 형용사,겨울 밖으로 빠져나온저 비밀스러운 말줄임표는이미희 시인의 디카시 《봄밤의 연서》를 감상합니다.누구에게 연서를 보내본 적이 있었습니까?누구에게 연서를 받아 본 적이 있었습니까?만년필 잉크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며 오래 묵은 종이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며 아름답게 또는 슬프게 써 내려간 연서를 읽어 본 기억이 남아 있다면 이 봄 저 화려하게 피어나는 벚꽃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또는 쓸쓸하게 맞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인기 없는 나에게도 하루에 수십 개

스포일러 / 권현숙 소담한 물풀학교사분음표 빼곡한 악보 몇 장♩♩♩ ♩♩ ♩ ♩♩ ♩곁눈질 하던 바람의 허밍에살짝 맛본 여름 합창회개나리가 활짝 핀 봄 풍경을 수채화로 그려놓았나 싶었는데 빼곡한 사분음표가 오르락내리락 살아 움직이는 악보가 되는 권현숙 시인의 디카시 '스포일러'를 감상합니다.사진도 독특한데 글도 살아 움직이는 듯 소담한 물풀 학교에서 바람의 지휘와 악보에 따라 미리 연습하는 합창, 악보 그대로 연주하면 미완성이지만,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질 것 같고 여름철 개굴, 개 개굴 울어댈 개구리들의 합창이 벌써

-부적 / 이상주-배 타고 나간 님꼭 돌아오라고땅끝에 코뚜레단단한 놈으로 달아놓았어요나는 망부석이 싫어요사진을 보면 바닷가에 원 형태의 돌담이 쌓여 있다.아마도 충남 서산 지역의 어촌과 섬 지역에서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기 위한 독살의 한 형태로 보인다.독살의 유래는 분명치 않으나 원시적인 형태의 전통 어법이다.요즘은 물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어법이 아닌 어촌에서 관광자원 개발의 일환으로 어민들의 소득을 향상시키고 있다.시대가 변하면서 생계의 유지 목적도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는 모습이다.작가는 독살을 보

매의 발톱 / 박종대 대형 유조선을 고정하던 후크에 쇠 꽃이 피었다앞으로 30년을 위해발톱과 부리를 뽑아 새 꽃이 돼야 한다박종대 시인의 디카시 《매의 발톱》을 감상합니다.무엇을 끼우거나 잠그기 위해서 긴 쇠붙이 또는 끈 따위로 둥글게 구부려 끝을 맞붙여 만든 것인데 고리처럼 생긴 것을 후크라고 합니다.사진은 대형 유조선을 정박해놓기 위해서 만든 후크입니다. 시인은 녹이 슨 후크를 바라보면서 매의 발톱이라는 놀라운 발상을 하였습니다. 오래된 후크가 녹이 슬어 빨갛게 변식된 것을 꽃이 피었고 그 꽃이 다시 피기까지 새로운 발전을 위해

날다 / 이용철하늘을 날고 싶은 꿈생을 말려서 이루었네.햇살에 연어 살빛 같은 몸산 너머 고향 돌아갈 수 있을까. 봄으로 가는 길목에 해풍에 잘 말라가는 물고기가 푸른 하늘에 널려 날아오르는 듯한 바닷가 풍경에 고향 생각을 잠시 하게 하는 이용철 시인의 디카시 '날다'를 감상합니다.하늘을 날고 싶은 물고기를 생각하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찰 처마에 매달려있는 풍경이 떠오릅니다. "바람이 발로 걷어차서 뗑그렁뗑그렁 소리 낸다"는 저의 동요 풍경도 떠오르고 사찰에 있는 속이 빈 목어도 떠오릅니다. 두 번째는

어떤 경고는 아름다워서 꺼냈던 손을 다시호주머니 속으로 넣게 만든다 골목 후미진 곳에 가면 비양심적인 사람들의 투기로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작가는 길을 가다 골목의 한 귀퉁이에 손으로 서툴게 쓰인 경고 문구를 보게 된다.거기에는 ‘골목이 깨끗해서, 골목이 깨끗해서 좋아요’라는 초등학생이 쓴 것 같은 삐뚤빼뚤 손 글씨가 마음에 영사되어 호주머니 속 작은 양심을 넣게 만든다.‘깨진 유리창 이론’이라고 다들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먹먹한 삶/이시향오늘을 견뎌내지 않으면내일은 사라지고 마는 배고픈 거리에서얼마나 더 줍고 모아야편한 세상 올지 모를 먹먹함으로견뎌 내는 것이 살아지는 사라지는 삶이시향 시인의 디카시 《먹먹한 삶》을 감상합니다. 바로 서지 않는 구부러진 허리로 하루의 명줄을 붙들기 위해 종일 폐지를 모으는 노인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저만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입니다.얼마나 줍고 모아야 편한 세상이 올지 모르는 막막함을 견뎌내어야 살아지고 또 사라지는 삶이라고 시인은 말해 놓았습니다.흔히 삶이란 무엇일까? 삶이란 어떤 것일까? 내가 살아가는

- 숲세권 아파트/ 김효운 우린 역세권은 필요 없지숲이 최고야 내가 집 샀다니까 니가 까치냐땅 한 평도 없이 하시던 어머니.... 이파리 모두 떨어진 겨울 메타세쿼이아 나무 꼭대기에 까치집이 층을 이뤄 다섯 개나 보입니다. 참 보기 드문 풍경에서 김효운 시인은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는 역세권을 언급하며 더 살기 좋은 숲세권이라는 단어를 불러왔습니다.역세권의 정확한 의미 파악을 위해 검색해보니 제가 몰랐던 아파트 신조어가 많습니다. 학세권, 초품아, 공세권, 호세권 등 숲세권도 산과 나무, 풀로 둘

그림자 / 송경숙밀려드는 외로움에발밑을 보았다나와 똑같은 모습의네가 있었다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작가는 바위에 앉아서 물 아래 먹잇감을 찾아 노려보는 왜가리 한 마리가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것으로 인식한다. 일종의 나르시시즘을 생각하게 하는 디카시다.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물에 비친 자기의 모습에 반하여 수선화가 된 이야기를 후대에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에 의하여 나르시시즘이란 정신분석학 용어로 나오게 된다.나르시시즘은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자기애라고 번역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애가 있다. 하지만 너무 강한

달 뜨는 밤 / 조영래 생각이 많아서생각이 헝클어지면생각을 버려라지금 떠나보내는 것어디선가 새로운 싹을 틔우리"걱정이 걱정을 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생각이 생각을 해서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위에 조영래 시인의 디카시 '달 뜨는 밤'처럼 밤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강과 같아서 한번 빠지면 잠을 잘 수 없게 만드는 흡수력이 있습니다.그 강에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은 깊은 늪으로 점점 빠져들어 예전에 일까지

홍연(紅緣)/ 최재우희한하지 나이를 먹게 되면괜스레 눈물이 나는 거야섣달에는 엄마 품이 더 그립지춥다 구도와 색감, 대비와 여백이 잘 조화되어 편안함을 주는 사진에 먼저 압도되는 작품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작은 감이 홍시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위쪽으로 보니 산수유가 붉게 익은 걸 알 수 있었습니다.가지 잘린 나무는 수령이 제법 많을 것 같은데 창백한 하늘에 아직은 살아있다고 처연하게 붉은 눈물 흘리며 배고픈 겨울 새들을 부르는 것 같습니다. 저렇게 붉은 열매가 되기 위해 봄에는 노랗게 꽃을 피우고 거친 비바람을 견뎌내며

가족 품으로 / 박종대하늘을 가르는 주몽의 화살보다더 빠르게 달리는 어부의 마음 요즘 같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날은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각자의 생활에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은 학원에 아버지들은 퇴근 후 직장생활의 고단함과 스트레스를 동료들과 한잔의 술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겨울철로 접어들며 코로나 유행이 더 커지면서 2.5단계 강화라는 조치가 내려오며 5명 이상 집합금지 및 저녁 9시 이후에는 식당 등의 문을 닫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이런 일련의 코로나 방역 강화로 인하여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